#7 해설
2010년 LEET 언어이해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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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조선시대의 실정법 체계는 한편으로 〈대명률(大明律)〉과 또 한편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 〈속대전(續大典)〉 등 국전(國典)의 양대 지주로 편성되어 있었다.
이를 전율(典律) 체제라고 한다.
이러한 체제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당초에 조선의 건국자들은 조선을 성문법에 의하여 전일적(全一的)으로 통치하고자 하였다.
그에 따라 국전 편찬을 시작하려 했지만 그 완비까지는 시일이 걸리므로 가장 시급한 과제부터 처리하려 했다.
그것은 형사 사법 체계 혼란의 극복이었다.
조선의 건국자들은 그 해결책으로 기성의 형법을 그대로 가져와 쓰는 방안을 택하였다.
그리하여 명나라에서 만든 형사법인 〈대명률〉이 수용되었는데, 태조의 즉위 교서는 이를 언급하고 있다.
이 〈대명률〉은 보편적인 범죄의 다양한 양상을 일관된 체계 하에 규정하면서도 신분의 차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명률〉은 그것이 외국의 형법이었기 때문에 국전의 편찬과 맞물려 다양한 수용 양태를 보였다.
첫째, 〈대명률〉에 따라 조선의 관행이 변경되는 것이었다.
예컨대 죄질에 상관없이 칼[枷]을 씌우고 있던 조선의 행형 관행이 장형(杖刑) 이상의 범죄에만 칼을 씌우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둘째, 〈대명률〉의 규정이 조선의 실정에 맞추어 적용되는 경우가 있었다.
예컨대 처제와 형부 간의 간통의 경우 〈대명률〉에 의하면 일반 간통으로 처벌되나, 조선에서는 대릴사위제를 취하던 전통에 따라 일반 간통보다 가중하여 처벌하였다.
둘째의 경우 중 국전에 수록되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자식이 부모를 고발한 경우 〈대명률〉은 무고(誣告)가 아닌 이상 사형보다 낮은 형벌로 규정하였지만, 국전은 사형으로 규정하였다.
셋째, 〈대명률〉에는 없었지만 형사 사법 운영을 위해 필요한 절차적 규정을 국전에 두기도 하였다.
예컨대 지방의 관찰사가 사형 판결을 직접 내릴 수 없게 한 규정이 그것이다.
한편 전 국토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성문 법전의 완비에는 시일이 걸렸다.
그 이유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진 독특한 법전 편찬 과정에 있었다.
조선시대 제정법의 원천은 왕명이었는데 이를 통상 '수교(受敎)'라고 한다.
보통 관청이 사무 처리에 필요한 사항을 왕에게 보고하고 왕이 이를 승인하면 이것은 당해 관청에 대해서 유효한 입법으로 성립하였다.
그런데 수교는 계속하여 쌓여갔고, 전후의 수교 간에 그리고 서로 다른 관청에 내려진 수교 간에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법전 편찬은 전 국토의 전일적 지배와 함께 수교 간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각 관청에 내려진 수교 중에서 계속하여 적용할 것을 선택하고 수정하여 육조(六曹)의 행정 체계에 따라 이를 편찬하였다.
이 작업의 최초 결과물은 〈경제육전(經濟六典)〉으로 이것이 최초의 국전이었다.
그 뒤 새로운 수교가 쌓이자 이 수교들을 모아서 〈속육전(續六典)〉을 편찬하였는데 〈경제육전〉과의 충돌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 문제는 고법(古法)인 〈경제육전〉과 모순되는 내용을 삭제하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또한 일시 시행되는 수교를 따로 수록한 국전인 '등록(謄錄)'을 별도로 발간하였다.
그리고 이 두 방식을 이후 법전 편찬의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속육전〉의 증보와 등록의 발간만으로는 수교 간의 충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전대의 국전들을 모아서 수정하고 산삭(刪削)하여 이들을 대
체하는 법전을 편찬하게 되는데 이것이 〈경국대전〉이다.
〈경국대전〉 중의 형전(刑典)은 〈대명률〉 수용 과정의 산물이었다.
일반적인 범죄의 처벌은 〈대명률〉에 따르고, 조선의 특별한 사정에 관련된 규정은 따로 만들어 〈경국대전〉 형전에 수록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전율의 관계는 "〈경국대전〉에 의하여 〈대명률〉을 쓰되, 〈경국대전〉, 〈속대전〉에 해당하는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전(二典)에 따른다."라고 한 〈속대전〉 형전의 용률조(用律條)에서 확인된다.
위 글의 서술과 일치하는 것은?
① 〈경제육전〉과 〈속육전〉은 〈경국대전〉을 보완하였다.
② '등록'에 수록된 수교는 〈경국대전〉에 포함되지 않았다.
③ 〈경국대전〉의 편찬 이후에 수교는 법전 편찬에 사용되지 않았다.
④ 〈경국대전〉에 수록되지 않은 수교가 '등록'에 수록되어 있기도 하였다.
⑤ 〈경제육전〉에 수록된 수교는 〈속육전〉에 수록된 수교와 입법 시기가 겹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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