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해설
2012년 LEET 언어이해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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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조선의 관제는 주나라의 육전(六典) 제도를 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주현(州縣)의 향리는 조정의 여러 관직을 모범으로 삼아 본뜬 것이다.
이 둘은 비록 그 명칭이 같지 아니하고 지위의 높고 낮음에 차등이 있다 하더라도, 다스리는 일을 나누어 맡는다는 의미에서는 일찍이 서로 다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조정에서 벼슬살이하는 자는 세가 대족(世家大族)에 속하는 무리가 많다.
그들은 내직(內職)을 거쳐 외직(外職)으로 나아가며, 낮은 자리에서 높은 자리로 승진하여 나라 전체에 두루 명성을 떨친다.
또 그들이 그러한 지위로 말미암아 무슨 일을 성취하게 되면, 문필가와 사가(史家)들이 그 업적을 더욱 빛나도록 찬미하여 수백 년이 지나더라도 그 화려한 업적은 잊히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반면에 오로지 주현에서 벼슬살이하는 자는 그 문지(門地)가 변변치 못하고 맡은 바 직무가 아주 낮으며 명성도 한 지역을 넘어 떨치지 못한다.
혹 높은 식견과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모두 묻혀 사라져서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하니 비록 그 같은 인재를 자랑하여 기록하려고 한들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사실을 나는 심히 한스럽게 생각한다.
본관이 월성(月城)인 사과(司果) 벼슬의 이진흥은 신라와 고려 이래로 이서(吏胥)로서 가문을 일으킨 인물을 널리 고찰하여 「관감록(觀感錄)」 한 편을 지었다.
그리고는 부친 통덕랑(通德郎) 이경번이 지은 「이직명목해(吏職名目解)」 및 「감은시(感恩詩)」·「호장소(戶長疏)」·「향공소(鄕貢疏)」를 그 앞에 합하여, 『연조귀감(掾曹龜鑑)』이라 하였다.
그 글들은 근거가 확실하고 상소의 언사(言辭) 또한 가히 추려 쓸 만한 것이 많으며, 힘써 선함을 권하고 악함을 깨우치는 기록이 연이어져 있어 가히 읽을 만하다.
그러므로 이 책에 실린 내용은 마땅히 향리들만이 거울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건대 사대부 또한 가히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니, 이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 다만 위아래 오륙백 년 사이에 행적이 많이 흩어져 버려 진기한 꽃이나 특이한 나무 같은 뛰어난 인재를 많이 채록할 수 없었으니, 이 또한 문지 때문에 그리된 것이다.
내가 듣기에 옛적에는 사람을 등용할 때 재(才)와 덕(德)으로써 그 기준을 삼았으며 문지로써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하·은·주 3대 이래 모두 이와 같이 하였으니 대개 부열과 여상이 그러한 예이다.
소를 기르던 백리해가 등용되고 노예였던 위청이 발탁된 일은 그것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 사례이다.
하물며 주현에서 벼슬살이하던 사람은 위와 같은 사람들과 비교하면 서로 차이가 나는 정도만이 아니다.
그런즉 주현에서 벼슬살이하던 사람을 조정에 등용하는 것은 단지 관부의 책임자로 승진시키는 정도이니, 생각건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후세에는 그렇지가 않아서 오로지 문지로써만 사람을 등용하였다.
그러므로 뛰어나고 특이한 능력을 지닌 선비라도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면 길이 막혀 벼슬할 수가 없으며, 주현에서 벼슬살이하던 사람은 연자방앗간에서 맷돌을 돌리는 당나귀와 같아서 종신토록 벗어날 수가 없다.
선비 또한 이러한 처지 때문에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끝내 낮고 천한 지경에 빠져 버린 자마저 있으니, 오호라 어찌 애석하지 않으랴.
㉠ 무릇 현달하여 명성을 떨치는 것이 이미 저와 같고, 막히어 세상에 파묻혀 버린 것이 또한 이와 같으니, 문지만으로는 족히 인재를 쓸 수 없음을 알겠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문지가 한미하다 하여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기꺼이 낮고 천한 지경에 빠져 버리는 자는, 어진 사람을 임용하고 능력 있는 이를 쓴다는 내용의 시조차 읽지 않은 자이리니,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진실로 능히 그 천성을 온전히 하며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면, 이 역시 천하의 어질고 귀한 일이다.
관작이나 공로가 어찌 또한 대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옛적의 서기는 천인이었음에도 행실을 닦아 세상에 이름을 떨쳐 진신(縉紳)과 처사(處士)가 그를 존경하고 흠모함이 오래도록 줄어들지 않았다.
황무진은 가리(假吏)였으나 몸을 닦아 충효에 뛰어나 원주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그를 모시는 제사를 지낸다.
이 두 사람이야말로 이른바 어질고 고귀한 인물인데, 이들이 어찌 관작을 바라서 자신을 존중했겠는가. 이 책 속에 기록된 내용이 이 같은 뜻을 잘 드러냈으니 취하고 버리는 것의 분별이 분명하다고 할 만하다.
사과 이진흥의 후손인 이명구가 이 책을 간행하려고 하면서, 나에게 서문을 써 줄 것을 청해 왔다.
둔하고 거친 내가 어찌 족히 이러한 일을 맡기에 합당하리요마는, 다만 사과 부자가 명(名)을 다스리고 실(實)에 힘썼음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말을 하려고 하였을 뿐이다.
이에 서기와 황무진 두 인물의 사례를 들어 그 뜻을 널리 펴려고 한 것이다.
- 이민행, 「연조귀감 서」-
'향리'에 대한 글쓴이의 이해로 옳지 않은 것은?
① 향리는 유교 가치를 수용했다.
② 향리 중에는 조정에 등용된 자도 있다.
③ 향리도 백성을 다스리는 계층의 하나이다.
④ 향리의 지위는 시대에 따라 점차로 높아졌다.
⑤ 향리 조직은 중앙 조직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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