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해설
2017년 LEET 언어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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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조선 성종 8년(1477) 조정에서는 여성의 재가(再嫁)를 둘러싸고 토론이 벌어졌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이심의 처 조 씨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조 씨의 오빠인 조식이 전 칠원현감 김주가 과부인 누이 집에 와서 유숙한 것을 두고 강간이라고 고발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사 결과 김주와 조 씨는 이미 성혼한 사이였으나, 중매를 거치지는 않았다.
조식은 과부가 된 누이를 돌보지 않다가 그 누이의 재산을 차지하려고 무고한 것이었다.
이렇게 끝날 뻔했던 사건이 부녀자의 재가 문제로 논제가 옮겨가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당시 성종이 전·현직 고위 관료 46명을 불러 부녀자의 재가에 대한 의견을 들었는데, 다음이 대표적인 의견들이었다.
㉠ 영돈녕부사 노사신 등이 아뢰기를, "부인의 덕은 한 남편을 섬기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자에게 재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부모와 자식이 없어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절개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국가에서 부녀자가 재가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으니 그전대로 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 지중추부사 구수영 등이 아뢰기를, "사족(士族)의 여자가 일찍 과부가 되어 생계가 막막해서 부득이 재가한 경우와 부모의 명으로 재가한 경우는 형세상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경국대전〉에서도 세 번 시집가는 것에 대해서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있고, 집이 가난하지 않은데도 스스로 재가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정욕을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금후 이 경우는 세 번 시집간 사례로 적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 예조참판 이극돈 등이 아뢰기를, "〈경국대전〉에, '재가한 부녀자에게는 작위를 주지 않고, 세 번 시집간 자는 실행(失行)한 자와 한가지로 아들과 손자에게 과거 응시와 현관(顯官: 특정한 요직) 제수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정상을 참작하여 법을 만든 것으로 풍속을 경계하고 장려하기에 족합니다.
결혼한 여자가 한 남편을 끝까지 섬기는 것이 마땅하지만, 불행히 일찍 과부가 되어서 의탁할 곳이 없으면 그 재가가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국가에서 사람마다 절의를 가지고 책임지우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일일이 논죄한다면 또한 어려울 것이니 〈경국대전〉에 따라서 시행함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 무령군 유자광 등이 아뢰기를, "예전에 정자(程子)가 가로되, '재가는 후세에 굶어 죽을 것을 두려워하여 하는 것이다.
절개를 잃는 것은 지극히 큰 일이고, 굶어 죽는 것은 지극히 작은 일이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풍속이 절의를 돌아보지 않고 재가하고, 국가에 금령이 없어 절개를 잃은 자의 자손이 현관의 직에 오르는 일이 풍속을 이루며, 혼인을 주선하는 자가 없는데도 스스로 지아비를 구하는 자까지 있습니다.
금후로는 부녀자들의 재가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모두 실행한 것으로 처벌하고, 그 자손도 관직에 오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유자광의 의견에 동조한 사람은 세 명뿐이었다.
성종은, "전(傳)에 이르기를 '신(信)은 부녀자의 덕이니 한 번 합께 하였으면 종신토록 고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삼종지의(三從之義)라는 말이 있는 것인데 세상의 도리가 날로 비속해져 사족의 여자가 예의를 돌보지 않고 스스로 중매하여 다른 사람을 따르니, 이는 가풍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유학의 가르침을 더럽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재가한 여자의 자손은 관직에 임용되지 못하도록 하여 풍속을 바로잡도록 하라."라고 명하였다.
그에 따라 성종 16년(1485)에 수정된 〈경국대전〉에서는 재가한 여자의 아들과 손자는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고 어떤 관직에도 임용되지 못하도록 규정되었다.
한편, 이심의 처 조 씨는 친척이 혼인을 주선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시집간 죄로, 김주는 조 씨와 혼인하되 예를 갖추지 않은 죄로 〈대명률〉의 "화간(和姦)한 자는 장 80에 처한다."라는 조항에 따라 모두 처벌하고 이혼시켰다.
조 씨 사건으로 촉발된 논의는 결과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하락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논의 과정에서, 재가의 상대가 된 남성이나 재혼한 남성에 대한 처벌은 언급조차 되지 않은 점도 당시 사회 분위기를 잘 보여 준다고 할 것이다.
윗글의 논의를 바탕으로 〈보기〉의 사례에 대해 추론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 기>
사족의 딸인 목 씨는 첫 남편 강철호가 죽자 오빠 목인수의 중매로 남예건과 혼례를 올렸다.
재혼 당시 목 씨는 부모가 모두 사망하고 친족으로는 목인수만이 있는 상황이었으며, 남예건에게도 자식이 없었다.
① 이심의 처 조 씨 사건과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일이라도 목 씨는 조 씨와 같은 죄목으로 처벌받지 않았을 것이다.
② 〈경국대전〉이 수정되지 않았다면 목 씨와 남예건 사이에서 태어날 아들은 관직 진출에 법령상 제한을 받지 않을 것이다.
③ 수정된 〈경국대전〉에 따르면 목 씨와 남예건의 손자는 과거에 응시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④ 〈경국대전〉이 수정된 뒤에는 목 씨의 유죄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 목 씨의 나이와 형편을 살폈을 것이다.
⑤ 〈경국대전〉이 수정된 뒤에도 목 씨의 남편 남예건 본인에게 적용될 처벌 규정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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