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해설
2014년 LEET 언어이해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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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책장의 가장 밝은 곳에 꽂혀 있던 아르판의 책을 꺼내어 한국어로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건 그처럼 암담한 시기를 지나는 중이었다.
내게도 뛰어난 이야기를 알아볼 눈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 요리는 못해도 미각은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 증명에서 시작해, 나 자신에 대한 신뢰부터 되찾고 싶었다.
나는 와카어의 지식을 되짚어가며 정성껏 번역했다.
극심한 가난과 조울증의 고통 속에서 그 작업은 한 해 넘게 계속되었다.
자세를 똑바로 잡았다.
등을 등받이에 밀착시키고 꼬았던 다리를 펴 내렸다.
감정을 최대한 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판, 지금 이 노래 들리지요?"
이번엔 여자 가수가 떼로 출동해 저를 떠나지 말라며 악을 쓰고 있었다.
아르판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지도 않았다.
그건 내 예상과 아주 많이 다른 것이었다.
정적이 흘렀다.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차라리 그가 벌떡 일어나 화를 내기를, 울부짖거나 원망하기를, 혹은 주먹을 들어 ㉡ 내 굶은 영혼에 매질을 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아니, 소름끼치는 눈으로 찬찬히 관찰했다.
표정을 읽어 낼 수 없어 답답했다.
나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번안 곡이에요.
원래는 삼사 년 전에 일본, 아, 그런 나라가 있습니다.
아무튼, 그 일본에서 만들어진 곡이거든요.
그러나 알고 보면 일본 것도 아니지요.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던 시절에 일본이 흠모하던 영국의 동요가 그 뿌리니까요.
하지만 영국 이전에는 네덜란드의 서민 음악이었고, 그 음악은 17세기 중국 광동 지방으로부터 흘러나온 전통 리듬에 뿌리를 두고 있답니다.
자, 그렇다면 중국 광동 지방의 어느 중국인이 이 노래의 원작자일까요?"
아르판은 대답하지 않았다.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시커먼 눈동자가 무서웠다.
답답했다.
나는 부탁하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다르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하고 나는 쫓기듯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비록 광동의 리듬을 차용했지만, 이 곡에는 자신이 거쳐 온 네덜란드나 영국, 일본, 그리고 우리 한국의 고유한 향수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게다가 알려진 게 그 정도라 그렇지, 더 깊이 파고들다 보면 전혀 다른 지역으로까지 소급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복잡한 노래의 마디마디에서 원작자를 찾는 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옳지도 않습니다.
더 자세히 얘기해 봅시다.
이 음악은 칠음계를 사용하고 있군요.
또 리듬의 중심엔 일렉트릭 베이스가 있네요.
그렇다면 칠음계의 수학적 원리를 고안한 피타고라스, 베이스 기타의 발명자인 폴 툿말크를 불러다 이 음악에 관한 창조의 권리를 부여해야 할까요? 그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피타고라스가 숫자를 발명했나요? 툿말크가 소리를 발명했어요? 그렇지 않아요.
인간의 예술은 단 한 번도 순수했던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벌이는 모든 창조는 기존의 견해에 대한 각주와 수정을 통해 나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이는 겁니다."
나는 아르판이 모를 게 분명한 온갖 장르와 지역과 사람의 이름을 난잡하게 혼용함으로써 문화와 예술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은 내 논리의 허점을 감추려 노력했다.
높이 쌓는 행위가 문화라면 아르판이 씌워 나간 건 예술이다.
하지만 나는 그 차이를 일부러 무시했다.
무시하고, 어떻게든 동일시하기 위해 애썼다.
(중략)
나는 거의 화를 내고 있었다.
바락바락 대드는 심정으로 말했다.
"네, 나는 당신 것을 훔쳤습니다.
하지만 난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덧칠함으로써 더욱 멋지게 살려냈습니다.
내가 훔치지 않았더라도 당신 이야기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세상에 드러났을까요? 아닙니다.
내가 훔치지 않았다면 그 이야기는 머지않아 당신과 함께 영원히 묻혀 버릴 겁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입니까? 불멸하는 것과 영원히 묻히는 것, 어느 쪽을 원합니까? 당신은 당신이 창조해 낸 인물들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필경 수 년 내에 쓰러져 묻힐 ㉢ 저 가우뚱한 오두막에서의 명예를 사랑합니까?"
옳지 않은 것을 설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에게 욱박지른 논리는 ㉣ 내가 발명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
말을 끝낸 뒤, 묘하게 고정되어 있는 아르판의 까만 눈을 피해 곱창볶음만 바라보았다.
부끄럽다기보다는 겁이 났다.
와카의 땅에서라면 이런 짓을 한 나는 그의 거친 손에 붙잡혀 죽었을지 모른다.
그리하여 ㉤ 취향도 멋도 아닌 대중성으로 요란히 장식된 한국산 기성복과 함께 화장터에서 불살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문명 세계고 나는 이곳의 주민이어서, 어느 순간 아르판의 눈빛이 맥없이 풀리리라는 것을, 제 피조물과 이야기를 영원히 살리는 쪽으로 동의하리라는 것을, 내가 이기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과연 아르판이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그윽하게 감는 것이었다.
스피커에서는 떠나지 말라며 악을 쓰는 목소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나는 차라리 모든 것이 떠나가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없는 아르판도, 나를 가난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구해 준 저 책도, 불멸을 향한 아찔한 기만도, 저주받은 욕망과 열정도, 죄의식에 억눌려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나날도 모두, 모두.
조금 지나 아르판이 눈을 떴다.
맑고 굵은 눈에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빛이 어려 있었다.
잠시 나를 보더니, 천천히 일어났다.
일어나고 일어났다.
다 일어났다고 생각한 뒤에도 한참을 더 일어났다.
고급 승용차의 자동 안테나처럼 위로 쭉쭉 올라갔다.
그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가우뚱하게 서 있지 않았다.
엄청난 신장을 과시하듯, 자신이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지 아냐고 묻는 듯 똑바로 기립했다.
그 상태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만 돌아가 쉬어야겠군요.
여러 가지로 수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르판의 얼굴에는 놀랍게도 아무런 분노나 절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겉으로만 보자면 오히려 정말로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뜻밖의 반응에 당황한 나는 무릎으로 의자를 밀치고 일어났다.
어정쩡하게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① 인물이 처한 상황과 심리가 인물 자신의 시각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② 현실로부터 소외된 인물을 통해 사건의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③ 배경 공간을 객관적이고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
④ 인물의 성격 변화를 극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이야기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⑤ 사건들을 원래 발생 순서와 다르게 제시하여 사건들 간의 인과성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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