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해설
2009년 LEET 언어이해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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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그녀는 목덜미가 선득거리자 외투 깃을 올렸다.
회사 앞 골목을 빠져나오며 그녀는 생각했다.
'내 인생이 남 보기에 그렇게 안되어 보일 만큼 실패한 걸까?'
그러자 괜히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자기가 동료들과 세상 사람들을 멋지게 속여 넘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세상 사람들 앞에 은닉하고 있는 것은 남루한 옷차림의 이 도령이 ㉠ 도포 속에 감춰 가지고 있던 마패 같은 것은 아니었다.
또는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가난한 여주인공이었던 여자가 알고 보니 무슨 재벌 총수의 딸이더란 식의 돈 많고 지위 높은 아버지를 감춰 두어서도 아니었다.
글쎄, 그녀로선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자기 맘속의 어떤 그윽하고 힘찬 상태, 그걸 뭐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중략)
한수가 십 년 전 처음 문자의 자취방으로 드나들기 시작했던 때는 한겨울이었다.
유난히도 눈이 잦았던 그해 겨울을 문자는 거의 지붕 위에서 살다시피 보냈다.
눈이 쌓인 채로 놔두면 그 물이 언제가나 콘크리트 천장으로 스며들어 곳곳에서 낙수가 지곤 했다.
오르내릴 사다리도 변변치 않았고 고압선이 길게 늘어져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는데도, 문자는 부삽을 들고 날개가 달린 듯 지붕으로 오르내렸다.
식당을 한다는 주인집 내외가 비죽이 웃으며 대청마루에 선 채 구경 삼아 쳐다보고 있거나 말거나, 그녀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마치 춤추듯 가볍게 눈을 퍼서 지붕 아래로 집어던졌다.
어쩌다 지나가던 행인이 흙탕물이 튀었다고 화를 내면, 날듯 뛰어내려 그의 바짓가랑이를 털어 주며 만족할 때까지 몇 번이나 사과하고 나서 또다시 지붕으로 올라가곤 했다.
또한, 헛간이나 다름없는 문자의 부엌에는 수도가 없었기 때문에 안집 마당에 있는 수도에서 일일이 물을 길어다 먹었다.
안집 마당으로 가자면 부엌 뒷문으로 나가서 높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이전의 세든 사람들에겐, 그 계단이 죽지 못해 오르내리는 ㉡ 굴욕의 사다리로 여겨졌었다.
그 가난한 여인들은 자신이 양손에 물바께쓰를 들고 낑낑거리며 계단을 오르는데, 주인집 여자가 비죽이 웃으며 자기의 뒷모습을 주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러나 똑같은 방을 빌려 사는 처지이면서도 문자는 그녀들과 전혀 달랐다.
그녀가 뒷문 앞에 나타날 때 보면, 무슨 좋은 일을 하다가 중단하고 나온 것처럼 항시 두 빨이 발그레했다.
때로 그녀는 양손에 바께쓰를 든 것도 잊고 층계참에 서서 한참 동안씩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그러고 난 뒤엔 두 뺨에 발그레한 빛이 안에서 불을 켠 것처럼 더욱 짙어졌다.
그녀가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은 마치 몸속에 깃들어 있는 싱싱한 생명의 탄력이 음계를 밟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그 계단은, 그 위에 있는 아주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그녀 혼자만 누리기 위해, 외부로 나타난 부분을 일부러 조악(粗惡)하게 꾸며 놓은 것같이 보였다.
주인집과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여느 식구들은 문자가 새벽같이 층계참에 나와 매운 연기를 마셔 가면서도 연탄 화덕에다 신나게 부채질을 활락활락 해 대며 때로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부엌의 아궁이에선 물이 솟았기 때문이다.
아궁이뿐만 아니라, 지붕이며 방고래를 고쳐 달랠 만한데도 문자가 혼자 힘으로 잘 참아 나가자, 주인집은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에게 물세 불세까지도 터무니없이 물리었다.
그래도 문자는 한마디도 따지지 않고 달라는 대로 선선히 내주었다.
마치 큰 여유가 있어 그만한 일은 불문에 붙이는 것처럼. 때문에 한집에 세 들어 사는 여인들은 문자의 살림 형편이 겉보기보다 훨씬 알심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어느 날 그녀들은 자기들끼리 짜고 불시에 문자를 찾아갔다.
방 안을 찬찬히 둘러본즉, 물이 스며든 천장은 페인트칠이 일어나 너덜거렸고, 녹슨 손잡이가 달린 캐비닛 이외에 이렇다 할 세간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들로서는 문자의 두 뺨에 서린 발그레한 홍조와 노래를 몸에 휘감고 있는 듯한 그 발랄한 생기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더욱 몰라졌다.
그녀들은 문자가 수돗가에 나왔다가 떠나고 난 뒤에, 향기 좋은 꽃으로 가슴을 꾹 눌렀다가 뗀 것 같은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중 누가 엄지손가락으로 돌았다는 시늉을 해 보이면 거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듯 폭소를 터뜨렸다.
그녀들이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문자는 남다른 무엇을 소유했던 게 아니었다.
그녀로선 무엇을 하든 그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한 것뿐이었다.
콩나물을 다듬든, 연탄불을 피우든, 지붕 위의 눈을 치우든 그를 생각하노라면 어딘가 높은 곳에 등불을 걸어 둔 것처럼 마음 구석구석이 따스해지고, 밝아 오는 것을 느꼈다.
그 따스함과 밝은 빛이 몸 밖으로 스며 나가 뺨을 물들이고, 살에 생기가 넘치게 하는 것을 그녀 자신은 오히려 깨닫지 못했다.
한수가 그녀에게 오는 것은 단지 일요일 밤뿐이었지만, 그는 항시 그녀의 ㉢ 시렁 위에 걸려 있는 등불이나 다름없었다.
시장에서 물건을 깎다가도 그녀는 '그가 만약 이 사실을 안다면' 하고 깎는 일을 그만두었고, 남과 다툴 뻔하다가도 그를 떠올리면 분노가 촉촉하게 가라앉았다.
이렇게 해서 월요일, 화요일 …… 토요일을 보내는 사이에 그는 그녀의 존재 자체를 조금씩 연금(鍊金)시켜, 이윽고 일요일이 되었을 땐 그녀의 손길이 닿기만 해도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금빛 물이 들었다.
문자는 그가 미처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이미 그의 발걸음 소리를 알아듣고 미리 나가서 그를 맞아들었다.
그녀가 그의 옷을 벗기면 그 옷이 금빛으로 물들었고, 양말을 벗기면 양말이 그러했다.
뜨거운 물이 담긴 대야를 가져와 그의 발을 씻기면 그 발 역시 금빛이 났다.
그녀가 그를 위해 마련한 저녁상은, 가난한 자가 일주일 내내 거친 술과 젖은 걸레로 마룻바닥을 힘들여 닦아서 번 돈으로 ㉣ 성전(聖殿) 앞에 켤 양초를 사는 것같이 마련된 것이었다.
한수는 그녀가 살코기를 집어 줄 때마다 입을 딱 벌려 받아먹기만 할 뿐, 자기도 그녀의 입에 그 고기를 먹여 주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한수의 마음은 무디고 이기적이어서 온 방 안에 가득 찬 금빛을 보지 못했고, 가만히 있어도 그 침묵이 노래임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그녀의 몸을 만지면서도 ㉤ 잘 익은 과육에서 나는 것과 같은 향기가 자기 손가락에 묻어나는 것도 몰랐다.
① 주변의 평가에 좌우되면서 주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② 소극적이고 유약한 듯하지만 내면의 힘을 간직하고 있다.
③ 자신의 순수한 삶을 타인들이 알아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④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채 이웃들과의 소통을 갈망하고 있다.
⑤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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