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해설
2018년 LEET 언어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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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989년 냉전 체제가 해체되면서 동유럽사, 특히 폴란드의 역사 서술은 더 복잡해졌다.
예컨대 소련–폴란드 전쟁을 거론하지 않을 만큼 강했던, '사회주의 모국'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는 사라졌다.
미래보다 과거가 더 변화무쌍하고 예측하기 힘들다는 농담은 실로 그럴듯했다.
당시 동유럽의 '벨벳 혁명'은 가까운 과거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크게 바꾸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형제애'라는 공식적 기억의 장막이 걷히자, 개인사와 가족사의 형태로 사적 영역에 숨어 있던 기억들이 양지로 나왔다.
이 현상은 폴란드 연대 노조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1980년부터 지하 출판되었던 역사서들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다.
그 역사 해석은 다양했는데, 특히 전투적 반공주의 역사가들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사회주의가 외래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들은 폴란드 공산당 특히 국제주의 분파를 소련의 이익을 위해 민족을 판 배반자라고 하여 주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이 분파 지도부의 상당수가 유대계임을 감안하면, 전투적 반공주의가 반유대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입장과 1968년을 전후한 폴란드 공산당의 공식적 입장은 공통분모를 가진다.
당시 권력을 장악한 애국주의 분파 역시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모국'에 대한 공격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국제주의 분파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반독일 감정을 키워 소련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해소하려 했다.
이 시기 ⓐ 공산당의 공식적 역사 서술과 ⓑ 전투적 반공주의 역사 서술을 엮는 끈이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였다면, 19세기부터 21세기 초까지 좌우를 막론하고 폴란드의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집단 심성은 희생자 의식이었다.
폴란드 낭만주의가 처음 내세운 '십자가에 못 박힌 민족'이라는 이미지는 폴란드 인이 공유하는 역사 문화 코드였다.
그리고 이차 대전에서 독일의 침공에 의해 오백여만 명이 희생된 사실은 이 의식을 강화했다.
하지만 그 중 삼백여만 명이 유대계였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이 코드가 본격적으로 흔들린 분기점은 2000년의 스톡홀름 선언이었다.
여기에 참여한 유럽 정상들은 홀로코스트 교육의 의무화에 합의했고, 이는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는 전제 조건이 되었다.
이 시기 동유럽에서 때늦은 홀로코스트 책임론이 제기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동유럽 국가들은 나토와 유럽 연합에 가입함으로써 서구화를 추진했다.
정치적 서구화는 문화적 서구화를 낳고, 문화적 서구화는 역사학의 경우 전 유럽적 기억의 공간에 과거를 재배치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전통적인 역사 서술 단위인 민족과 국가를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 '트랜스내셔널 역사 서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제 트랜스내셔널 역사와 충돌하는 민족적, 국가적 기억은 재구성되거나 수정되어야 했다.
폴란드의 경우, 일방적으로 희생당했다는 의식이 재검토되어야 했다.
나치 점령 당시 폴란드 인의 협력이나 방관, 유대인에 대한 공격 등은 어느 정도 자발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우슈비츠 등지에서의 유대인 희생은 공산 정권 시기에 비판적 자기 성찰의 계기는 고사하고 아예 '말소된 기억'이었다.
유대인의 비극을 강조
하다가 다른 이들의 고통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것이 한 가지 구실이었고, 일부 서구 자본가들의 나치 지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또 다른 구실이었다.
더구나 빨치산의 반파시즘 투쟁을 강조하는 데 홀로코스트 가담 혹은 방관 문제는 방해가 되는 주제였다.
그러나 폴란드에서 과거에 대한 자기반성이 자동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1941년 같은 마을에 살았던 유대인들을 폴란드 인 주민들이 학살했던 사건을 다룬 『이웃들』이 2000년에 출간되자, 민족의 명예가 손상되었다고 느낀 민족주의자들의 분노가 확산되었다.
그리고 학살의 주체가 나치 비밀경찰이었다거나, 생존자의 증언만으로는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민족주의에 입각한 반론들이 나타났다.
이와 함께 독일 극우파들이 연합군의 독일 민간인 폭격 등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리하여 강조함으로써 민족주의를 정당화할 때마다, 역설적으로 폴란드에서의 자기 성찰은 약화되었다.
상충하는 민족적 기억들이 적대적 갈등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서로의 존재 이유를 정당화해 주는 '민족주의의 적대적 공존 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의 사건들에 대한 ⓐ~ⓒ의 서술 방향을 추론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 기>
㉠ 1943년 나치 점령 하에 있던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에서 나치에 저항하는 봉기가 일어났다.
㉡ 1979년 폴란드 출신 교황이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자리에서 미사를 집전한 것을 계기로 1984년 가스 저장실 터의 끝자락에 세운 카르멜 수도원은 폴란드 국민의 자부심의 장소가 되었다.
① ⓐ는 국제주의 분파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아, 유대계 폴란드 인이 ㉠에서 나치에 대한 투쟁을 선도했다고 서술했을 것이다.
② ⓑ는 강제수용소 자리를 역사적 교육의 터로 온전히 활용해야 한다고 보아, ㉡에 대해 비판적으로 서술했을 것이다.
③ ⓒ는 홀로코스트 교육에 필요하다고 보아, ㉠의 봉기 지역이 유대인 구역이라는 점을 객관적으로 서술했을 것이다.
④ ⓐ와 ⓒ는 모두 정치적인 이유에서 ㉠에 대해서는 사실을 왜곡하여 서술하고, ㉡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논조로 서술했을 것이다.
⑤ ⓐ, ⓑ, ⓒ는 모두 역사 서술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기 위하여, ㉠, ㉡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서술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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