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해설
2018년 민경채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11 해설
2018년 민경채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18년 민경채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18년 민경채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불교가 삼국에 전래될 때 대개 불경과 불상 그리고 사리가 들어왔다.
이에 예불을 올리고 불상과 사리를 모실 공간으로 사찰이 건립되었다.
불교가 전래된 초기에는 불상보다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탑이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불교에서 전하기를,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열반에 든 후 화장(火葬)을 하자 여덟 말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이것이 진신사리이며 이를 모시는 공간이 탑이다.
탑은 석가모니의 분신을 모신 곳으로 간주되어 사찰의 중심에 놓였다.
그러나 진신사리는 그 수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삼국시대 말기에는 사리를 대신하여 작은 불상이나 불경을 모셨다.
이제 탑은 석가모니의 분신을 모신 곳이 아니라 사찰의 상징적 건축물로 그 의미가 변했고, 예배의 중심은 탑에서 불상을 모신 금당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삼국시대 사찰은 탑을 중심으로 하고 그 주위를 회랑*으로 두른 다음 부속 건물들을 정연한 비례에 의해 좌우대칭으로 배치하는 구성을 보였다.
그리하여 이 시기 사찰에서는 기본적으로 남문·중문·탑·금당·강당·승방 등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였다.
그리고 반드시 중문과 강당 사이를 회랑으로 연결하여 탑을 감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고대국가의 신전에는 이러한 회랑이 공통적으로 보이는데, 이는 신전이 성역임을 나타내기 위한 건축적 장치가 회랑이기 때문이다.
특히 삼국시대 사찰은 후대의 산사와 달리 도심 속 평지 사찰이었기 때문에 회랑이 필수적이었다.
※ 회랑: 종교 건축이나 궁궐 등에서 중요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지붕 달린 복도
① 삼국시대의 사찰에서 탑은 중문과 강당 사이에 위치한다.
②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은 탑에서 금당의 불상으로 바뀌었다.
③ 삼국시대 말기에는 진신사리가 부족하여 탑 안을 비워두었다.
④ 삼국시대 이후에는 평지 사찰과 산사를 막론하고 회랑을 세우지
않았다.
⑤ 탑을 사찰의 중심에 세웠던 것은 사찰이 성역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2018년 민경채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18년 민경채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18년 민경채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