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해설
2014년 민경채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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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의 내용과 부합하는 것은?
금군이란 왕과 왕실 및 궁궐을 호위하는 임무를 띤 특수
부대였다.
금군의 임무는 크게 국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시위
임무와 왕실 및 궁궐을 지키는 입직 임무로 나누어지는데,
시위의 경우 시립, 배종, 의장의 임무로 세분된다.
시립은
궁내의 행사 때 국왕의 곁에 서서 국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이고, 배종은 어가가 움직일 때 호위하는 것이며, 의장은
왕이 참석하는 중요한 의식에서 병장기와 의복을 갖추고
격식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 전기에 금군은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의 세 부대로
구성되었다.
이들 세 부대를 합하여 금군삼청이라 하였으며
왕의 친병으로 가장 좋은 대우를 받았다.
내금위는 1407년에
조직되었다.
190명의 인원으로 편성하였는데 왕의 가장
가까이에서 임무를 수행하였으므로 무예는 물론 왕의 신임이
중요한 선발 기준이었다.
이들은 주로 양반 자제들로 편성
되었으며, 금군 중에서 가장 우대를 받았다.
1409년에는 50인
으로 구성된 겸사복이 만들어졌는데, 금군 중 최고 정예
부대였다.
서얼과 양민에 이르기까지 두루 선발되었고
특별히 함경도, 평안도 지역 출신이 우대되었다.
겸사복은
기병이 중심이며 시립과 배종을 주로 담당하였다.
우림위는
1492년에 궁성 수비를 목적으로 서얼 출신 50인으로 편성
되었다.
내금위와 겸사복의 다수가 변방으로 파견되자 이를
보충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서얼 출신의 관직 진출을 열어
주기 위한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겸사복이나 내금위
보다는 낮은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중앙군 소속의 갑사
보다는 높은 대우를 받았다.
① 양민은 원칙상 금군이 될 수 없었다.
② 갑사는 금군보다 높은 대우를 받았다.
③ 우림위가 겸사복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④ 내금위 병사들의 무예가 가장 뛰어났다.
⑤ 어가 호위는 겸사복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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