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설
2017년 5급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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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게 됨에 따라 삶이 힘들어진 조선인의
일본 본토로의 이주가 급격히 늘었다.
1911년에는 약 2,500명에
불과하던 재일조선인은 1923년에는 9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
정부는 재일조선인의 급증에 대해 조선인이 가장 많이 거주
하던 오사카에 대책을 지시하였고, 이에 1923년 오사카
내선협화회가 창립되었다.
이후 일본 각지에 협화회가
만들어졌고, 이들을 총괄하는 중앙협화회가 1938년에 만들어
졌다.
협화란 협력하여 화합한다는 뜻이다.
재일조선인은 모두 협화회에 가입해야만 하였다.
협화회
회원증을 소지하지 않은 조선인은 체포되거나 조선으로 송환
되었다.
1945년 재일조선인은 전시노동동원자를 포함하여
230만 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모두 협화회의 회원으로
편성되어 행동과 사상 일체에 대해 감시를 받았다.
조선에
거주하는 조선인이 군이나 면과 같은 조선총독부 하의
일반행정기관의 통제를 받았다면 재일조선인은 협화회의
관리를 받았다.
협화회는 민간단체였지만 경찰이 주체가 되어 조직한 단체
였다.
지부장은 경찰서장이었고 각 경찰서 특별고등과
내선계가 관내의 조선인을 통제하는 구조였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침략 전쟁에 비협력적 태도로 일관하였고, 임금과
주거 등의 차별에 계속 저항하였으며, 조선인들끼리 서로
협력하고 연락하는 단체를 1천여 개나 조직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고, 전쟁에 비협조적이면서
임금문제를 둘러싸고 조직적으로 파업을 일으키는 조선인
집단을 적결대상으로 삼았다.
이것이 협화회를 조직하는 데
경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유였다.
협화회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감시와 사상 관리뿐 아니라
신사참배, 일본옷 강요, 조선어 금지, 강제예금, 창씨개명,
지원병 강제, 징병, 노동동원 등을 조선 본토보다 더 강압적
으로 추진했다.
재일조선인은 압도적으로 다수인 일본인에
둘러싸여 있었고 협화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협화회는
재일조선인을 분열시키고 친일분자들을 증대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학교에서 일본어와 일본사
등의 협화 교육을 받은 조선인 아이들이 조선어를 아예
모르는 경우까지도 생겨났다.
철저한 황민화였다.
하지만
재일조선인들은 집에서는 조선말을 하고 아리랑을 부르는 등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후 조선에서와 마찬가지로 태극기를 만들어 축하
행진을 할 수 있었다.
① 협화회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다.
② 협화회는 조선총독부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하였다.
③ 협화회는 재일조선인 전시노동동원자에 대한 감시를 자행
하였다.
④ 재일조선인은 협화회에 조직적으로 저항하며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⑤ 일본의 민간인뿐만 아니라 일본 경찰에 협력한 조선인 친일
분자들이 협화회 간부를 맡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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