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해설
2010년 5급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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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의 내용과 부합하는 것은?
조선시대의 세계 인식은 기본적으로 중국 중심의 중화사상에 입각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는 '화이론(華夷論)'에 따라 한족이 사는 지역을 '안[內]'이라 하여 그 종족 및 문화를 '중화[華]'로, 주변민족이 사는 지역을 '밖[外]'으로 보아 그 종족 및 문화를 '오랑캐[夷]'로 구분하였다.
이때 문화의 내용은 유교문화의 수용과 발달 여부를 기준으로 하였다.
한편 화이론에서는 조공체제(朝貢體制)가 성립하지 않는 지역을 소위 '교화가 미치지 않는 곳[化外之地]'이라 하여 '짐승[禽獸]'이 사는 곳으로 취급하였다.
15세기 조선은 명(明)의 정치·문화·군사적 우월성을 인정하고 사대외교(事大外交)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조선이 명에 대해 사대한 것은 어디까지나 신생국인 조선이 강대국인 명으로부터 국제적으로 승인받고, 이를 통해 정치적 안정을 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체성이나 독립성을 방기한 것은 아니었다.
명에 대한 사대를 표방하면서도 정도전의 요동정벌 시도나 세조 연간 여진에 대한 관할권을 둘러싼 명과의 긴장 국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선은 경우에 따라서는 명과의 대결을 시도할 정도로 독자적 움직임을 드러내었다.
이는 조선이 중국과 마찬가지로 천명(天命)을 받아 성립된 국가이므로 독자적 영역을 이룬다는 의식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대외인식은 16세기에 들어와 변화하기 시작한다.
화이론을 옹호하는 사림세력이 집권하고 지배층의 주류를 차지하면서 숭명(崇明)의식이 강해졌다.
이제 사대는 실리적인 외교수단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명이 조선에게 아버지의 나라이자 황제국이라는 사실은 이해(利害)와 시세(時勢)를 초월하는 불변의 가치로 자리잡았다.
중국의 화이론에서는 조선 역시 '이적(夷狄)'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사림세력은 기자 이래 수용하여 발전시킨 유교적 전통을 기준으로 조선의 문화적 정체성을 중국과 동일시하였고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라 자부하였다.
대신 주변 국가인 일본·여진·유구 등을 타자화(他者化)하여 이적으로 간주하였다.
17세기에 들어 명이 망하고 만주족이 세운 청(淸)이 중원을 차지한 이후에도 조선의 대외정책은 화이론과 소중화 의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이적인 청이 중화인 명을 멸망시키고 황제국을 칭하였기 때문에 현실에서 중화의 담지자는 조선뿐이라는 '조선 중화주의'가 새롭게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중화주의는 명의 멸망으로 인해 이제 중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게 된 중화를 조선이 책임지고 조선 땅에서 구현할 것을 주장하였다.
조선 중화주의는 조선의 지위를 종래의 '소중화'에서 '중화'로 격상하여 중국으로부터 조선의 주체성·독립성을 고양한 듯 보인다.
그러나 관념상 조선은 명에 대해 여전히 중화와 소중화라는 불변의 관계로 고정되어 있었으므로 조선 중화주의의 주체성·독립성은 진정한 의미에서 실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선이 청을 오랑캐라 멸시하며 명의 복수를 명분으로 '북벌론'을 주창하였던 것은 '조선 중화주의'가 근본적으로 화이론·소중화론으로부터 벗어난 것이 아니었음을 잘 보여준다.
① '조선 중화주의'는 이미 멸망한 명을 이어 조선을 유일한 황제국으로 인식하였다.
② '화이론'에서는 교화가 미치느냐 미치지 않느냐에 따라 오랑캐와 짐승을 구별하였다.
③ 16세기와 비교할 때 15세기 조선의 사대외교는 이해와 시세라는 정치적 실리를 초월하여 전개되었다.
④ '조선 중화주의'는 문화적 자존의식과 정치적 이해를 앞세웠기 때문에 청과의 정치적 긴장을 야기하였다.
⑤ 전통적으로 중국은 조선을 '이적'으로 분류하면서도 기자 이래의 유교적 전통을 이유로 '소중화'로 인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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