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설
2017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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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 대한 추론으로 옳지 않은 것은?
도량형의 기본은 도(度), 즉 척(尺)이다.
척이 가장 먼저 출현하고, 척을 이용하여 양기(量器) 등을 제작하기 때문이다.
먼저, 신라와 통일신라시대의 길이의 단위인 척과 다른 단위인 보(步), 장(丈) 등의 관계를 살펴본다.
첫째, 척과 장의 관계를 살펴보면, 중국은 고대부터 1장=10척을 사용했다.
신라시대에서는 『삼국유사』에서 황룡사 9층탑의 전체 높이를 '225척'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삼국사기』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22장'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 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척과 보의 관계는 6척=1보로 유추된다.
중국은 어느 시기부터 '1보=6척'제가 시행되다가 당대에 대척제가 시행된 이후, '1보=5척'제가 시행되었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주나라에서 주척(周尺)(20cm)이 만들어졌으며, 이후 한에서 한척(漢尺)(22~23cm)을 사용하였다.
당에서는 당소척(唐小尺)(24.5784cm)과 당소척의 1척 2촌인 당대척(唐大尺)(29.4cm)이 존재하였으며, 당소척은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되었고 민간에서는 주로 당대척을 사용하였다.
신라와 통일신라시대는 어떤 길이를 가진 척을 사용하였을까? 「단석산 신선사 조상명기」에 의하면 7세기경 경주 단석산 정상 부근의 석굴사원에 높이 3장(=30척)의 미륵석상 1구와 보살상 2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최근 정확한 불상의 높이를 컴퓨터 3D로 측정하니 미륵석상의 높이는 6.62m였다.
그러므로 7세기 미륵석상의 조상(彫像) 때 사용된 1척은 약 22.07cm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신라 7세기 단석산 신선사 미륵석상의 조상 때 사용된 척은 한척임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당과의 외교관계를 통해 당대척을 도입하여 점차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8세기 초 유물인 「황복사 금동사리함기」에 의하면 '성덕왕 원년(702)에 효소왕이 승하하자 성덕왕이 석탑 2층에 불사리와 6촌의 순금제 미타상 1구를 안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출토 유물로는 14cm의 금동여래입상과 12.2cm의 금동여래좌상이 각각 1구씩 출토되었다.
어느 유물이 사리함기의 기록과 정확하게 부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양 유물을 6촌의 기록과 비교하면 1척은 약 23.3cm와 20.3cm이다.
이로써 700년을 전후한 시기 불상 조상에 사용된 척은 한척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성덕왕 21년(722) 일본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관문성 축성기록에도 척의 용례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축성기록을 분석하여보면 작업거리는 '1보=6척'에 의해 계산되었고, 작업거리의 측정에는 당대척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고려는 통일신라시대의 당대척을 계승하였다.
고려시대 척의 길이는 어떠한 문헌 자료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고려 초기 많은 제도들이 통일신라의 제도를 수용한 것임을 고려할 때, 척도 고려 초기 새로운 척을 제정하여 사용하였기보다는 전시대에 사용하던 것을 계승하여 사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려 초기 금석문 기록을 통해 고려의 기준척을 이해할 수 있다.
「용두사당간기」에 따르면 광종 13년(962) 용두사의 당간을 만들었는데, 30단의 철통으로 60척의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연구에 의하면 '용두사의 당간은 30단의 철통을 세웠지만 현재 20단이 남아있고, 전체 높이가 12.7m이고, 1단(2척)의 높
이는 63cm이다'라고 한다.
다만, 고려의 척은 후기를 거치면서 점차 분화되었고, 길이도 길어졌다.
고려시대의 도량형의 관리는 『고려사』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외관(지방)은 동·서경, 도호부, 8목으로 하여금 이를 관장케 하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앙의 도량형은 어디서 관리하였을까? 고려시대 시장의 물가 관리는 경시서가 담당하였다.
경시서가 처음 설치될 때 도량형을 관리하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명종 11년 경시서에서 재추·대간·중방 관원들이 모여서 말과 섬의 양기(量器)인 두곡(斗斛)을 검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이를 유추할 수 있다.
① ㉠이 뜻하는 바는 신라와 통일신라시대의 길이의 단위 중 척과 장의 관계는 고대 중국과 유사하였다는 것이다.
② 통일신라는 8세기 초에 약 29.5cm 전후의 당대척도 사용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③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대척을 전면적으로 사용하였다.
④ 광종 13년 용두사의 당간 조성에 사용된 기준척은 31.5cm로서,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당대척보다 길어졌음을 알 수 있다.
⑤ 고려시대 도량형은 중앙은 경시서, 지방은 동·서경, 도호부, 8목 등의 관원이 관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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