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해설
2017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3 해설
2017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17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17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다음 글의 내용과 부합하는 것은?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장거리 여행에 가장 많이 이용한 교통수단은 말이었다.
여행에 말을 이용하면 도보보다 훨씬 힘이 덜 들고, 더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남효온·권업·박성원 등의 『금강산 유산기』에는 하루 이동거리가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하루에 대개 평탄한 길에서는 90리 내외, 산길에서는 60리 내외를 이동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말이 상당히 비싸서 소유하지 못한 사대부들이 적지 않았으며, 이들이 유람에 나설 때에는 말을 빌려 타야 하였다.
권복이 1828년 평안도로 귀양 가면서 작성한 『서정일록(西征日錄)』에서는 송도 말을 1박 2일 빌리는 데 3냥, 서흥 말을 3박 4일 빌리는 데 6냥을 사용하였으며, 당시 짚신 한 켤레에 4~6푼, 한 끼 식사에 1전을 지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10푼이 1전, 10전이 1냥이었으므로, 다른 물가와 비교해 볼 때 말을 빌리는 데 아주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행에 가마를 이용한 것은 주로 현직 관료들이다.
예조관서로 함흥 출장을 다녀오면서 금강산을 유람한 이정구는 서울에서 함흥까지 가교(駕轎)를 이용하였다.
가교는 '쌍가마' 혹은 '쌍교(雙轎)'로 부르기도 하는데, 가마의 앞뒤로 뻗은 가마채를 앞뒤 말의 안장 좌우에 걸고 가마 옆으로 가로지른 대를 4명의 가마꾼이 잡아 균형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진 가마이다.
쌍교는 말 2마리, 말몰이꾼 2명과 가마꾼 4명 등이 필요한 위엄과 안락함, 그리고 화려함을 두루 갖춘 가마이므로, 정1품 등 2품 이상의 관리와 관찰사, 승지를 지낸 사람만 탑승할 수 있었다.
험하고 좁은 길에서는 '견여(肩輿)' 혹은 '남여(藍輿)'라고 부르는 가마를 이용했는데, 가마채가 길게 뻗어 있고 발 디딤판과 함께 팔걸이와 등받이가 있는 가마이다.
쉽게 말하면, 의자에 가마채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통 네 사람이 어깨에 메는 가마였다.
남여를 메는 일은 승려들이 담당하였는데, 조선 후기에는 큰 사찰마다 담당 구역이 정해질 정도로 남여를 일반적으로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금강산에서는 내금강은 장안사나 표훈사의 승려들이, 외금강은 유점사와 신계사의 승려들이 남여를 메었으며, 내금강과 외금강의 경계인 안무재에서 서로 교대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사대부들은 여행에서 숙박 장소로 관아·역·사찰 등을 이용하였다.
지방 관아에서 숙박할 때에는 객사(客舍)에 머물렀는데, 객사는 주사(主舍)와 익사(翼舍)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사는 전패(殿牌)·궐패(闕牌)를 모셔두고 고을 수령이 정기적으로 참배하는 공간이었고, 주사의 좌우에 있는 온돌방인 익사는 사신이나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숙박하는 시설이었다.
이 좌우의 온돌방을 보통 동헌(東軒)과 서헌(西軒)이라 하였는데, 상급 관리가 동헌에, 하급 관리가 서헌에 묵었다.
① 『금강산 유산기』에 따르면, 평탄한 길은 360리, 산길 180리를 말을 타고 이동한 경우 평균적으로 6일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② 『서정일록』에 따르면, 송도 말을 1박 2일 빌리는 데 사용한 돈으로는 30켤레의 짚신을 충분히 구매할 수 있었을 것이다.
③ 쌍교와 남여는 모두 4명의 가마꾼이 필요하며, 가마꾼은 주로 승려가 담당하였다.
④ 쌍교를 타고 여행한 여행자가 공무로 여행을 하는 경우 주사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⑤ 정5품의 이조의 정랑과 정3품인 홍문관의 부제학이 같은 관아의 객사에 머무르게 된 경우 정랑이 동헌에, 부제학이 서헌에 묵었을 것이다.
2017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17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17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