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해설
2018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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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 대한 추론으로 옳지 않은 것은?
공공공간은 개인들의 '공적 삶', 즉 타자와의 마주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물론 공적 삶이 구체적 공간을 타자들과 동시에 '점유함'으로써만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방에서 신문을 보고 TV를 보고 SNS에 접속하는 것 역시 공적 삶이다.
그런데 공공공간은 구체적 공간에서 타자들을 직접 대면하고 마주치는 곳이다.
타자들의 생활을 직접 보고 듣는 공간이고, 타자들이 나를 직접 보고 듣는 공간이다.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타자를 보지 않고 듣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은 보고 듣지 않지만 자신은 보이고 들릴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공간은 공적 삶과 사적 삶이 선택적으로 공존하고 중첩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버마스는 개인들 간의 소통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공간을 '공공영역'이라고 정의했다.
이를 하버마스가 원래 사용하는 개념인 '사적 개인들로서의 공중이 논의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마당'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공공영역'보다 '공론장'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러나 공론장의 영역을 직접적인 의사소통 행위의 장뿐 아니라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실천의 장으로 넓힌다면 오히려 '공공영역'이라는 용어가 적합하다.
공공공간 역시 공론장이었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 공공공간은 통치권력 과시수단임과 동시에 제한적 자유시민들에게 허용된 신앙-오락공간이자 공론장이었다.
근대사회에서도 공공공간은 여전히 권력 과시수단이면서 부르주아 시민의 공론장이기도 했다.
이미 신문·잡지 등 여론 형성 매체가 등장했지만 광장과 카페 등 공공공간 역시 중요한 역할을 직접 담당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공론장은 이미 정보미디어가 차지한 지 오래다.
모든 개인이 손에 쥔 정보기기와 일체화된 상태다.
이제 공공공간은 공론장이라기보다는 공론장 작동을 유발하고 촉진하는 촉매로서의 '공공영역'이라 하는 것이 적절하다.
공공영역으로서의 공공공간은 단순히 사적으로 소유되지 않는 공적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들의 생활이 마주치는,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개인들이 소통과 교감을 기대하는 그런 공간이 공공영역으로서의 공공공간이다.
익명적인 개인들이 중첩적으로 마주치는 공간이다.
월드컵 응원에 열을 올리다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던 그 광장, 길거리 이벤트를 둘러서서 구경하다가 서로 쳐다보며 미소 짓는 길거리 공간, 그런 공간들 말이다.
공공건축물 역시 중요한 공공공간이고 공공영역이다.
그러나 공공영역으로서 공공건축물의 기능은 광장과는 다르다.
광장이나 길이 '익명의 개인들의 중첩적 마주침을 통해 공공적 감수성을 키우는 공간'이라면 공공건축물은 '공간적 경험을 통해 공공적 감수성을 키우는 공간'이다.
공공적 감수성이란 '공적 존재로서 자신을 자각하도록 하는 자극을 받아들여 느끼는 성향'이다.
인간은 다른 개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즉, 공적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쉽사리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을 홀로 세상과 마주하는 고독한 존재라고 여긴다.
이런 '고독한 존재감'을 넘어서 자신이 공적 존재임을 자각하는 능력이 바로 '공공적 감수성'이다.
공공적 감수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이 매우 유효하다.
'세계–내–존재' 개념의 핵심은 '이미 세계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방 안의 책상과 강아지와 창밖의 나무가 세계의 일부로 존재하듯이 인간인 '나'도 이미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세계의 일부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세계와의 관계는 인간이 존재하는 조건인 셈이다.
존재 조건으로서의 세계와의
관계는 '타인들과의 관계'도 포함한다.
'세계–내–존재'란 곧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상황 속 존재라는 이야기다.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은 세계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세계를 의식하고 규정한다.
당연히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규정한다.
이때 자신의 존재 조건인 '타인들과의 관계 속 나'를 의식하고 규정할 수도 있고 '독자적 존재로서의 나'로 규정할 수도 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나'를 의식하는 능력, '공공에 속한 나'를 의식하는 능력, 이것이 '공공적 감수성'이다.
공공공간을 '공론장 촉매로서의 공공영역'이라 하는 것은 이것이 공공적 감수성을 자극하고 키우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광장이나 길은 '익명의 개인들의 중첩적 마주침을 통해 공공적 감수성을 키우는 공간'이다.
그것이 월드컵 응원이든 촛불시위든 또는 길거리 공연 구경이든 광장과 길에서는 타인들과의 마주침과 갖가지 '사건'들이 증폭된다.
'타인들과의 관계 속 나'를 의식하도록 자극한다.
이에 비해 공공건축물은 '공간적 경험을 통해 공공적 감수성을 키우는 공간'이다.
'타인들과의 마주침'보다는 '건축공간을 경험하는 감각'을 통해 '공공에 속한 나'를 의식하도록 자극한다는 것이다.
① 타자와의 소통과 교감이 있는 공공공간에서는 공적 삶이 존재할 수 있다.
② 근대 이전 사회에서 공공공간은 구체적인 공간을 필요로 하며 공론장의 성격이 있었다.
③ '세계–내–존재'개념은 세계의 일부로 존재하는 '나'라는 점에서 자신이 공적 존재임을 자각하는 '공공적 감수성'과 연결된다.
④ 익명적인 개인들이 중첩적으로 마주치는 길거리 공간은 건축공간에 대한 경험을 통해 공공적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공공건축물과 구별된다.
⑤ 현대사회에서의 공론장 안에서는 사적 삶이 존재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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