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해설
201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16 해설
201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1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1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다음 글을 읽고 (가)~(라)에 해당하는 사례를 <보기>에서 골라 바르게 연결한 것은?
삼십육계는 중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중국인들의 지혜로서 전쟁 상황에서 적용 가능한 서른여섯 가지의 지략(智略)을 말한다.
다음 (가)~(라)는 삼십육계의 일부를 소개한 것이다.
(가) 차시환혼(借屍還魂)이란 '남의 육체를 빌려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뜻으로, 자신이 한 번 실패한 후에 어떤 다른 힘을 빌리거나 이용하여 재기한다는 의미이다.
군사적인 면에서 이것은 쓸모없거나 유용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되었던 군용물, 지리적 여건, 환경 등을 변모시켜 아군에게 유리하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나) 가치부전(假痴不顛)이란 거짓으로 적의 예봉을 피하려고 일부러 미친 척 또는 바보처럼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속내를 은폐하고 상대의 경계심을 늦추게 한 후 기회를 틈타 행동을 취하는 계책이다.
(다) 격안관화(隔岸觀火)란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는 뜻으로 적의 진영에 내분이 일어나면 적이 무너지거나 쓰러질 때까지 기회를 살피며 기다리는 관망의 전술을 의미한다.
(라) 이대도강(李代桃僵)이란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 대신 벌레들에게 갉아 먹혀 죽듯이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라는 의미이며, 나의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취하는 전략과 비슷하다.
<보 기>
ㄱ. 마오쩌둥은 1930년대에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가 일본의 침략에 소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일본이 중국을 얕보고 공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장제스를 비난하였다.
이러한 마오쩌둥의 전략은 국민당 내부에서 분열을 유도하여 시안사변을 낳게 하였다.
시안사변으로 인하여 공산당과 국민당 간에 제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졌고, 장제스는 공산당에 대한 토벌전을 중지하고 일본군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오쩌둥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공산당의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공산당군인 홍군의 전력을 증강함으로써 일본의 항복 후 국민당군과 내전을 벌여 승리할 수 있었다.
ㄴ. 신라군은 김유신의 지휘를 받는 5만의 병력이었으나, 황산벌에서 백제군 5천 결사대와의 4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연패하여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김유신의 동생이자 김흠춘 장군의 아들인 화랑 반굴이 단신으로 적진으로 뛰어들어 싸우다 전사하였다.
뒤이어 김품일 장군의 아들인 화랑 관창이 나서 단신으로 백제의 진영으로 나아가 싸우다가 백제군에게 사로잡혔다.
계백 장군은 관창을 살려 신라군 진영으로 돌려보냈으나 관창이 다시 백제군 진영으로 돌진해오자 이번에는 관창의 목을 베어 그가 타고 온 말 안장에 매달아 돌려보냈다.
그러자 신라군은 화랑 반굴과 관창의 장렬한 죽음에 분기탱천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백제군을 공격하였으며, 계백 장군의 5천 결사대는 패하여 전원 전사하고 말았다.
ㄷ. 중국 초나라 장왕은 그가 왕으로 즉위했던 당시에는 대부 투초의 견제를 받아 왕권을 유지하는 것조차 불안하였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성색(性色)에 빠진 것처럼 굴며 궁녀들과
음탕한 짓을 벌이고, 궁문에 '나라가 평안하니 과인은 많은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명예를 탐내어 간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라는 포고문을 걸도록 하였다.
이렇게 3년 간 왕권을 겨우 유지했던 장왕은 어느 날 마치 맹호가 눈을 뜬 것처럼 탐관오리를 엄벌하고, 그동안 눈여겨 보아두었던 오거 등 충신들에게 국정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또한, 새롭게 능력 있는 대신들을 중용하는 한편, 수백 명의 간신을 신속하게 제거해버렸다.
장왕은 이러한 일련의 조치로 대신들의 지지 하에 자신을 견제했던 투씨 일족들을 제거하고 왕권을 공고히 함으로써 춘추오패의 반열에 오르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ㄹ. 한국전쟁 시 낙동강까지 밀렸던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북진하였으나, 중국군의 개입과 연속된 두 차례의 공세로 다시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유엔군이 북한지역으로부터 철수할 때 북한지역에 있던 많은 애국청년들이 동해와 서해상의 인근 섬들로 대피하였다.
당시 북한군과 중국군은 해군과 공군이 거의 없는 상태였고, 지상전에서 국군과 유엔군과의 치열한 전투로 인해, 동해와 서해상의 섬들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어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해와 서해의 섬으로 대피한 애국청년들은 야간에 육지로 상륙하여 공산군 후방의 주요시설을 수시로 공격함으로써 북한군의 후방을 교란하였다.
북한지역 도서에서의 반공청년들의 활동에 관한 첩보를 입수한 유엔군사령부는 이들을 조직적으로 규합하고 미군과 국군의 유격부대를 추가로 투입하여 조직적인 유격부대로 활용하였다.
이에 따라 북한군과 중국군은 해안 및 후방지역 방어에 상당한 병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한국전쟁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① (가) - ㄹ, (나) - ㄱ
② (가) - ㄷ, (다) - ㄱ
③ (나) - ㄷ, (다) - ㄹ
④ (나) - ㄷ, (라) - ㄴ
⑤ (다) - ㄹ, (라) - ㄴ
201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1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1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