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해설
201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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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것은?
길례는 현왕이 선대왕에게 제사를 드려, 왕권의 안정적 계승과 왕위의 정통성을 과시하려 한 국가의 으뜸되는 전례이다.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내세운 조선 왕실은 오례로서 예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예제를 중시한 조선에서는 역대 국왕과 왕비의 위패를 종묘에 모셔 국가적 제사로 봉행하였다.
조선시대에 유교적 예제를 확립하고자 왕조 정부는 국가 전례서를 펴내어 오례의 항목을 수정하고 보완하였다.
아울러 시기에 따른 역사적인 변용을 수용하고 오례 운영을 더욱 완벽하게 실천하려는 움직임을 이어 나갔다.
조선 전기에는 「국조오례의」를, 조선 후기에는 「국조속오례의」와 「국조속오례의보」, 「춘관통고」 및 「대한예전」을 편찬하였다.
「국조오례의」에는 예제의 순서가 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로 되어 있다.
그런데 오례의 편차에 있어 중국의 예서는 이와 다르다.
「주례」에는 길례, 흉례, 군례, 빈례, 가례의 순서로 되어 있고, 이것은 「진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송사」에는 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의 순서로 되어 있다.
조선은 1392년 건국하자마자 개성에 있는 고려의 종묘를 헐고 그 자리에 새 왕조의 종묘를 새로 지었다.
그러나 1394년 8월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기로 결정하자 궁궐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칙에 맞춰 경복궁의 동쪽에 종묘, 서쪽에 토지신(土地神)과 곡신(穀神)에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社稷壇)을 세움으로서, 고려시대에 종묘와 사직이 도성 밖에 있던 것과 확실히 다른 유교 중심의 새로운 공간을 구성하였다.
조선 전기 국가 제례는 태종대부터 본격적으로 정비되었는데, 1412년에 고려의 예에 의해 여러 제사들을 대중소사(大中小祀)로 구분하고 각종 제사의 시행절차를 제정하였다.
이후 세종대에는 집현전을 중심으로 옛 제도를 연구하여 국가 제사를 더욱 체계화시켰고, 이후 보완작업을 거쳐 1475년에
「국조오례의」가 완성되었다.
「국조오례의」의 길례에는 종묘사직이나 산천 및 국가의 제사의식과 농사에 관한 것, 그리고 관료나 일반 백성의 시향을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에 국가 제사를 위한 전례가 정비되면서 고려시대와 여러 면에서 다른 유교적 예제로 바뀌었다.
중국에 대해 제후국을 자처한 조선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원구제가 폐지되고 사직에 대한 제사가 최고의 지위로 올라가고 조선 왕실의 조상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종묘가 그 다음을 차지했다.
또한 산천신과 역대 시조묘에 대한 제사가 추가되어 단군이나 삼국시조 및 고려시조가 역대 시조로서 대중소사 중 중사에 편입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많은 제사시설이 훼손되었는데, 복구된 것은 종묘와 사직 등 중요한 시설에 불과하여 국가의 제사를 지내는 체계가 약간 달라졌다.
반면, 임진왜란을 계기로 새로 생겨난 제사들이 국가의 사전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이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숙종대 흉년과 기근으로 인해 대사에 편입된 사직단의 기곡제였다.
또한, 명나라 군사의 참전으로 명나라 군사들이 군신(軍神)으로 추앙하는 관우에 대해 제사를 지내던 것에서 유래하여 관왕묘(關王廟)가 소사로 편입되었다.
이처럼 2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사회의 변동이 많아지면서 수정과 보완을 위해 1744년 「국조속오례의」를 편찬하게 되었다.
이처럼 조선 후기의 길례는 종묘와 사직에 대한 제사가 주가 되었고, 기타 많은 종류의 중사와 소사가 조선 말기까지 유지되었다.
① 조선 전기에는 오례의 편차를 확립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명나라의 영향으로 국가적 제사의 종류에 변동이 생기기도 하였다.
② 조선은 유교적 이념을 강조하여 종묘와 사직의 배치를 고려 시대와 다르게 하고 조선 이전의 시조에 대한 제사의식은 수용하지 않았다.
③ 조선은 유교적 이념에 바탕을 둔 일련의 전례서 개편과정을 통해 국가적 차원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의 의례까지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시행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보다 안정된 집권체제를 구축하려고 노력하였다.
④ 조선 왕실에서는 왕실의 조상신에 대한 제사보다 토지신과 곡신에 대한 제사가 더욱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⑤ 조선 후기의 대사에는 기곡제가, 소사에는 관왕묘가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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