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해설
201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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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을 읽고 추론할 수 없는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오늘날 죄수 수감시설을 통칭해 흔히 '감옥'이라고 부르지만, 이 용어는 근대 이후에 들어온 것이고 조선시대에는 엄밀히 말하면 '옥(獄)'이라 했다.
조선에서 죄인에 대한 형벌은 태·장으로 볼기를 치거나, 일정기간 노역에 처하거나, 종신 유배형을 내리거나, 심하면 사형에 처했지 오늘날처럼 감옥에 가두는 징역형은 없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의 옥은 형벌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들이 수감되는 곳이었다.
조선의 수도 한양에 위치한 대표적인 감옥으로는 형조 소속의 구금 전담 기관인 전옥서(典獄署)를 들 수 있다.
국사범, 정치범을 심문·조사했던 의금부는 죄인을 심문하는 호두각(虎頭閣)과 함께 서쪽과 남쪽에 옥사를 두었으며, 그 가운데 남간옥(南間獄)은 사형수를 가두던 옥사였다.
이외에도 죄인을 직접 잡아서 구속할 권한을 가진 관청이 더 있었는데, 이를 직수아문(直囚衙門)이라고 했다.
직수아문은 병조, 한성부, 사헌부, 승정원, 비변사로 구성되었고, 이들 관청에서도 별도로 구류 시설을 두어 운영하였다.
전옥서는 죄인 구금을 전담하는 관청이었던 만큼 죄수 관리를 맡은 소속 관리나 아전이 적지 않았다.
「육전조례(六典條例)」 기록에 따르면 관리로는 제조(提調) 2명, 주부(主簿) 1명, 참봉(參奉) 2명이 배치되었는데, 주부, 참봉과 달리 제조는 겸직으로서 형조 참관과 승정원의 형방승지가 겸했다.
따라서 종6품 벼슬의 주부가 전옥서의 실질적인 책임자였으며, 그 밑의 참봉 2명은 중죄인을 안치시키거나 감옥에 비치해두는 형구를 관장했다.
옥내의 제반 실무는 이서(吏胥) 7명이 맡았으며, 이외에 형벌 집행, 시신 검시, 경계 및 감시 등을 위해 사령(使令) 10명, 오작(作作) 1명, 군사(軍士) 10명, 행형쇄장(行刑鎖匠) 1명을 두었다.
전옥서에서 죄수를 가두던 옥사는 광해군 때에는 모두 9칸이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그 이후 남자용 옥사 9칸, 여자용 옥사 5칸 해서 모두 14칸으로 늘어났다.
구체적으로 남자용 옥사는 동쪽 3칸, 서쪽 3칸, 북쪽 3칸이며, 여자용 옥사는 남쪽 2칸, 서쪽 3칸이 배치되었다.
전옥서 내에는 옥사 외에도 관리 집무실, 사령청, 군사 수직방 등 각종 건물을 두었다.
<보 기>
ㄱ. 형조와 의금부는 직수아문(直囚衙門)에 속하지 않는다.
ㄴ. 평민 갑이 부모를 살해하여 사형을 선고받았다면, 남간옥(南間獄)에 갇힐 것이다.
ㄷ. 다른 관직과 겸직하지 않고 전옥서만 담당하는 관리는 3명 이상이었다.
ㄹ. 광해군 때 전옥서 내에서 남쪽에 위치한 건물은 모두 여자용 옥사였다.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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