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해설
2022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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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 대한 추론으로 적절한 것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조선시대 왕들은 국정을 처리하면서 또는 개인적인 이유로 수많은 작품을 창작하였다.
왕의 창작 활동은 당시의 유교정치문화라는 기반 속에서 우러나왔다.
예컨대 왕의 작품을 대표하는 시, 서, 화는 유교정치문화의 핵심인 경연, 비답(批答) 등과 관련이 깊었다.
조선시대 왕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경연을 거행하였다.
이 같은 경연에서 왕은 사서삼경 등의 유교경전과 역사책을 공부하였다.
그 결과 왕이 공부한 책의 내용이나 토론내용이 독립된 책 또는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 실리기도 하였다.
경연에 참석했던 경연관들이 사사로이 남긴 『경연일기』라는 책도 상당수 있다.
왕 역시 경연에서 자신이 읽은 책의 목록, 터득한 지식, 비판 의견 등을 별도로 남기기도 하였다.
아침 조회 이후 승지를 비롯하여 공무가 있는 신료들이 왕에게 업무보고를 하였는데, 대부분의 업무보고는 문서로 이루어졌다.
왕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는 8도의 관찰사들이 올린 것에서부터 중앙의 6조와 3사 관료들이 올린 공문서 그리고 수많은 양반과 백성들이 올린 상소문 등이었다.
상소문에 대한 비답이나 각각의 관서에서 올린 보고서에 대한 결재문을 왕이 직접 쓴 경우 이것은 공문서이기도 하고 또한 친필 작품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왕이 직접 창작한 작품들을 어제(御製)라고 하였고, 왕이 직접 쓴 글씨는 어필(御筆)이라고 하였다.
경연에 관련된 작품이나 비답 이외에도 왕이 창작활동을 할 기회는 많았다.
예컨대 지방관으로 발령받고 떠나는 관료들을 만날 때, 왕은 잘 하라는 당부를 하는데, 특별히 당부문을 작성해 주기도 하고 비밀지령을 작성해 주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왕은 가족이나 신료들과 모인 자리에서 시를 짓는 경우도 많았다.
서로 시를 이어가는 연시(聯詩)를 비롯하여 각자가 따로 짓는 시도 있었다.
이외에 흥이 넘쳐 스스로 시를 지을 때도 있었다.
이처럼 왕이 직접 창작한 시들은 왕의 시작품이 되었다.
아울러 왕이 대비에게 칭송문을 지어 올리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 역시 왕의 작품이었다.
왕이 신료들이나 친인척들에게 편지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궁궐이나 서원의 이름을 짓고 그 편액을 직접 쓰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자신의 자녀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고 그 증명서를 직접 써 주거나, 그림을 그려 남겨놓은 왕도 있었다.
이 같은 왕의 서간이나 편액 글씨 또는 재산문서, 그림 등은 중요한 문화재로 간주되기도 한다.
왕이 선왕의 능이나 지방의 온천에 행차하여 글을 지어놓은 것도 있었다.
나아가 『속대전』이나 『탁지정례』 같은 국가의 법전이나 『송자대전』 같은 개인 문집에 친필 서문을 쓰는 일도 있었다.
왕이나 대비 또는 왕족, 고관대작이 세상을 떠났을 때 왕이 짓는 제문(祭文)도 많았다.
나아가 특정한 개인의 자(字)나 호(號)를 직접 짓고 써 주기도 하고, 왕 스스로 자신의 호를 짓고 쓰기도 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왕의 작품들은 후대 왕에 의해 실록, 『국조보감(國朝寶鑑)』, 어제, 어필 등으로 정리, 편찬되었다.
실록은 후대 왕이 볼 수 없으므로 후대 왕으로서 긍지를 갖고 좋은 정치를 행할 수 있도록 실록 중에서 좋은 내용만 골라 편찬한 것이 『국조보감』이었다.
이 같은 『국조보감』은 경연의 교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후대 왕은 실록과 『국조보감』을 편찬하면서 선왕의 어제와 어필을 함께 수집, 정리하여 대궐에 보관하였다.
이는 선왕의 치적과 학문을 세상에 드러내는 한편, 후손으로서 조상의 흔적을 길이 간직하겠다는 의미였다.
조선시대 역대 왕의 어제를 모아 놓은 것을 열성어제라고 하였고, 어필을 모아 놓은 것을 열성어필이라고 하
였다.
영조대 이후부터는 어제와 어필 중에서 시문 등을 골라 국왕 문집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왕의 작품은 왕의 개인적인 작품 수준과 궁중 문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당대의 정치와 경제, 풍속, 유행 등을 두루 담고 있는 중요한 문화 자원이기도 하다.
※비답(批答) : 상소에 대하여 임금이 내리는 답
<보 기>
ㄱ. 왕이 누군가의 문집의 서문을 직접 짓고 써주었다면 어제도 되고 어필도 될 수 있다.
ㄴ. 왕에게 올린 상소문에 왕이 친필로 답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ㄷ. 선대 왕이 경연에서 토론한 내용을 후대 왕이 볼 수는 없었다.
ㄹ. 왕이 가족들에게 개인적으로 쓴 편지는 문화재라고 하기는 어렵다.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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