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해설
2022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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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 대한 추론으로 적절한 것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기원후 331년에 미천왕이 죽고 고국원왕 쇠(釗)가 왕위를 이었다.
이듬해 모용외도 죽고 그의 세자 모용황이 왕위를 이었다.
모용황은 고국원왕이 제3의 환도성에 천도하였다는 말을 듣자, 고구려가 장차 북벌할 것을 알고, 먼저 고구려에 침입하여 타격을 주는 동시에, 겉으로는 고구려를 피하여 멀리 달아날 곳을 가장하여 고구려로 하여금 방비를 소홀히 하게 하려고 하였다.
모용한(慕容翰)이, "고구려를 치자면 두 길이 있으니, 하나는 북치(北置)로부터 환도성으로 향하는 북도(北道)요, 또 하나는 남협(南峽)과 목저(木底)로 하여 환도성으로 향하는 남도(南道)인데, 북도는 평탄하고 넓으나 남도는 험하고 좁아서 고구려가 남도보다도 북도를 더 엄중히 방비할 것이니, 우리가 먼저 일부 군사를 내어 북도로 침입한다 일컫고, 가만히 대군을 내어서 남도로 공격하면 환도성을 깨뜨리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고 하여, 모용황은 모용한의 계교를 채용하였다.
고국원왕은 모용황의 군사가 북도로 침입해온다는 보고를 듣자 지들의 계교를 모르고 아우 무(武)를 보내 5만의 군사로 북도를 방비하게 하였다.
무는 황의 장군 왕부(王富)를 목 베고 그 군사 1만 5천을 전멸시켰으나, 왕은 적은 군사로 남도를 방어하다가 황의 대군을 만나 크게 패하여 단기(單騎)로 도망하니, 환도성이 드디어 적병에게 함락되어 왕태후(王太后) 주씨(周氏), 왕후 모씨(某氏)도 모두 적병에게 잡혔다.
황은 미천왕의 능을 파 그 시체와 왕태후 주씨, 왕후 모씨를 싣고 돌아갔다.
적병은 비록 돌아갔으나 죽은 아버지와 생모가 적국에 잡혀갔으므로, 고국원왕은 부모를 찾아오기 위해 공손한 말과 많은 예물로 모용씨와 교제하고, 하는 수 없이 지나 대륙에 대한 경영을 포기함에 이르러 수십 년 동안 약한 나라가 되었다.
환도성의 세 번의 천도는 고구려 상대(上代)의 성쇠의 역사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태조왕대 왕자 수성(遂成)이 요동을 점령하고 제1의 환도성을 지금의 개평 부근에 처음으로 쌓던 때는 고구려가 가장 강성한 시기이다.
발기가 모반하여 요동을 들어 공손씨에게 항복하므로 산상왕(山上王)이 제2의 환도성을 지금의 환인현 부근에 옮겨 쌓았다가 이것까지 위의 장수 관구검에게 파괴당하려 하던 때는 고구려가 쇠퇴해진 시기이다.
미천왕이 선비를 구축하여 낙랑·현도·요동 등 군을 차례로 회복하여 중흥의 실적을 올리다가 중도에 죽고, 고국원왕이 왕위를 이어 가지고 제3의 환도성을 지금의 집안현 부근에 다시 쌓았다가 또 모용황에게 파괴당한 때는 고구려가 가장 쇠미해진 시기이다.
이상의 기록은 『조선사략(朝鮮史略)』과 『삼국사기』에 보이는 것을 뽑아 기록한 것이어니와, 『진서(晉書)』는 이미 대략 말한 바와 같이 당태종이 고구려를 헐뜯고 욕하기 위해 허다한 사실 아닌 기사를 거짓으로 만든 것이 많은 글이다.
그러므로 위의 기사도 의심스러운 점이 없지 아니하다.
예를 들면 모용황이 미천왕의 무덤을 파갔다고 하였으나, 미천왕 때의 고구려 서울은 평양이었고, 미천왕이 돌아간 지 12년 만에 고국원왕이 환도성에 천도하였으니, 고구려 역대의 왕릉은 모두 당시 왕도 부근에 있었으므로, 미천왕은 돌아간 뒤에 반드시 평양에 묻혔을 것이고 환도성에 묻히지 않았을 것인데, 환도성을 침략한 모용황이 어찌 평양에 묻힌 미천왕의 능을 파갈 수 있으랴? 그러므로 미천왕의 능을 파갔다는 말이 극히 의심스러운 동시에, 그 이하에 기록된 왕태후와 왕후를 잡아갔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다만 이 뒤에 고구려가 30여 년 동안, 곧 모용씨가 멸망하기 이전에는 다시 지나 대륙을 경영하지 못했음을 보면 모용씨에게 크게 패하여 불리한 조건의 조약을 맺은 사실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 신채호,『조선상고사』에서 -
<보 기>
ㄱ. 기록에 따르면 고국원왕은 북도로 대군을 내어 침입하려는 모용황의 계교에 넘어갔다.
ㄴ. 기록에 따르면 환도성의 천도는 고구려 상대 성쇠의 역사를 보여준다.
ㄷ. 저자는 미천왕이 환도성이 아닌 평양에 묻혔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① ㄴ
② ㄷ
③ ㄱ, ㄷ
④ ㄴ, ㄷ
⑤ ㄱ, ㄴ,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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