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해설
200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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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의 내용에 가장 부합하는 것은?
음악이 일종의 언어라는 말들을 자주 하지만, 분명 음악은 프랑스어, 줄루어나 미국 수화와 같은 범주에 속하지는 않는다.
음악은 아마도 감정의 상태라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전달하는데, 결혼식을 상징하기 위해 결혼행진곡을 연주하는 것에서 보듯이 때로는 상징적이다.
그러나 음악은 수화를 포함한 모든 표준적인 언어에서 발견되는 문법적, 표현적인 가능성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음악에는 단어도 없고 음절도 없고 명사나 동사, 복수형이나 시제 같은 것도 없다.
음악은 사람이나 물체, 행동에 이름을 부여할 수도 없고, 수를 셀 수도 없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말할 수도 없고, 질문을 던지거나 지시를 내릴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그동안 사용해 온 그런 의미의 언어로서가 아니라 의사소통의 한 형태로 음악을 취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음악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아주 기초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한다.
어떤 음의 연속이 우리에게 하나의 멜로디로 이해되고 음악으로서 이해되는 것은 왜일까? 모든 음의 집합이 음악처럼 들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38rpm의 레코드를 78rpm으로 튼다든지 혹은 시디(CD)를 빠르게 돌리기를 하면 그저 무수한 따따따따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음악으로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악보를 거꾸로 놓고 피아노로 연주하면 이것도 역시 음악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첫째로, 그런 것을 듣는 데 습관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에 대한 논의를 상기해 본다면 그런 답은 너무 안이한 답인 듯하여 수상쩍다.
문제는 단순히 무엇에 습관이 되고 안 되고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어떤 곡조를, 가령 Happy Birthday 같은 것을, 생전 처음 듣는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똑같은 곡조를 거꾸로 그리고 뒤에서 앞으로 연주한 것을 듣고서 앞의 경험과 비교해 보라. 처음에 들은 노래는 한 번만 들어도 짜임새 있는 곡조로 들릴 것이며, 두어 번 들은 후에는 아마 허밍으로 따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것은(이것을 Yadhtrib Yppah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저 괴상한 음을 모아놓은 듯 이상하게 들릴 것이고 허밍으로 따라 부르기도 상당히 힘들 것이다.
이 두 가지 극단적으로 다른 반응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차이는 Happy Birthday는 우리에게 익숙한 음의 형식에 합치하고 Yadhtrib Yppah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후자는 리듬이 모두 불규칙하고 멜로디의 진행이 불분명하며 끝나는 부분이 끝나는 것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형식이라는 것은 도대체 뭘까? 전에 들었던 특정한 음악에 대한 기억일 수는 없다.
왜냐면 우리는 이 멜로디를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 가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으니까.
그보다는 차라리, 이 형식이란 것은 우리가 들은 적이 있는 모든 음악에서 끌어낸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형식을 앎으로써 우리는 다른 일들도 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Happy Birthday를 처음 들을 때라도 연주하는 사람이 틀린 음을 내면 그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왜냐면 틀린 음은 그 음악의 스타일에 따른 멜로디나 화음의 형식을 어기기 때문이다.
혹은 잘 아는 곡을 재즈로 편곡해서 각각의 연주자들이 코러스를 돌아가며 연주하게 되어 있는 곡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라. 물론 그들은 그 곡조를 정확히 그대로 연주하지 않는다(그러면 그것은 재즈가 아니리라). 그보다는 차라리 연주자들은 화음과 리듬과 멜로디의 구조 면에서 그 곡과 관련 있는 무언가를 연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관련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
어떻게? 의식할 바 없이 원곡의 형식과 여러 독주 코러스의 형식을 직관적으로 추출하여 비교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여기서 '직관적으로'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의식적으로 비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때 의식적으로 하는 일은 "그래, 잘 맞는군"이라든지 "좀 이상한데" 등이 고작이다.
음악 이론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들 형식 자체는 무의식적이다.
여기서 언어와의 유사성을 여러분은 분명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이해하는 능력, 즉 음악을 음의 연속 이상의 그 어떤 것으로 듣는 능력은, 여러 가지 음악적 형식들이 우리 머릿속에 들어 있어서 음악을 들을 때 우리가 그 형식을 사용하여 음악을 체계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이러한 음악적 형식은 일반적인 것으로서 어떤 특정한 곡조를 아는 것하고는 상관이 없으며, 같은 스타일을 가진 무한히 많은 수의 새 곡조에 적용될 수 있다.
그 반면에 Yadhtrib Yppah는 이들 형식에 맞지 않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상하게 느껴진다.
① 어떤 음의 연쇄가 음악으로서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그런 것을 듣는 데 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② 우리는 어떤 음의 연쇄이든 두어 번만 들으면 허밍으로 따라 부를 수 있다.
③ 어떤 곡을 재즈로 편곡해서 여러 연주자들이 연주할 때 우리는 이것과 원곡을 의식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이것과 원곡과의 관련성을 알아차린다.
④ 익숙한 스타일의 새로운 음악을 듣고 음악으로서 인식하는 우리의 능력은 스타일의 음악에 대한 이해를 체계화하는 무의식적인 음악적 형식이 우리에게 있음을 시사한다.
⑤ 음악은 수화를 포함한 표준적인 언어와 마찬가지로 문법적, 표현적 가능성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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