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해설
200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30 해설
200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0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0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다음 네 개의 글에서 암시된 진리 추구 방식과 가장 부합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가) 학생 성환은 2+2=3이라고 주장하고, 학생 세진은 2+2=5라고 주장한다.
둘은
서로 자기의 답이 옳다고 한참을 주장하다가, 결국 같은 반의 우등생인 혜원
에게 물어보기로 하였다.
(나) 김구의 『백범일지』에 보면, 레닌이 임시정부에 40만 루블의 독립 운동 자
금을 주었는데, 이 돈을 공산주의자인 김립이 빼돌려 공산당을 위해 써버렸
다는 주장이 나온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서 김산은 레닌이 임시정부가
아니라 공산당 인민회의 준비위원회에게 50만 루블의 공산금을 주었다고 말
한다.
이 중 30만 루블은 운반 과정에서 비적들에게 약탈당했고, 나머지 20만
루블은 인민회의 준비위원회에 전달되었다.
그런데 인력거를 타고 가던 김립
이 임시정부 측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고, 남은 돈은 임시정부가 가로채서 써
버렸다고 되어있다.
상반된 주장에 당황한 역사학도 같은 한국 현대사에 관
한 더 많은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다) 살인 사건을 조사 중인 형사 영란에게 두 명의 혐의자, A와 B가 인도되었다.
A는 B가 살인자라고 주장하고, B는 정반대로 A가 살인자라고 주장한다.
둘
을 대질시켰으나 서로 언성만 높아질 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형사
영란은 범행 현장 주변에 있었던 200명의 증인을 모두 불러들였다.
(라) 수학자 승현은 인간의 두뇌로는 결코 풀 수 없는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세
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사용했다.
컴퓨터는 수학자의 기대에 부
응하듯 그 문제의 답을 제공해 주었다.
수학자는 환호성을 올렸다.
그리고
이내 당황하게 되었다.
슈퍼 컴퓨터의 계산 결과를 검산하기 위해 그에게는
더 성능이 좋은 컴퓨터가 필요했는데, 그는 이미 가장 좋은 컴퓨터를 사용해
버린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보다 더 좋은 컴퓨터가 개발되기를 기
다리는 일 뿐이었다.
일 년 후 더 좋은 성능의 컴퓨터가 개발되었고, 그는 일
년 전의 결과를 검산하기 시작했다.
① 2500년의 서양철학사를 통해 어떠한 철학도 논박당하지 않았다.
논박당한 것
은 특정 철학의 원리가 아니라, 단지 이 원리가 마지막 원리이고 절대적 규
정이라는 주장이었다.
② 있는 것을 있다고 하고, 있지 않은 것을 있지 않다고 할 때, 나는 참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있는 것을 있지 않다고 하고, 있지 않은 것을 있다고 할 때,
나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③ 나는 유일하게 옳은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의 해석과 다른 해석 중에서 어떤 것이 옳은지를 판단할 때, 해석되어진
사실 자체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제3의 해석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 상
황은 말하자면 현재 한국 경제에 대한 A 경제 연구소와 B 경제 연구소의 상
이한 해석을 접하고, 이 중에 어떤 것이 더 올바른 해석이냐고 C 경제 연구
소에 문의하는 경우와 같다.
④ 우리는 어떻게 타인을 이해하는가? 이해란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사유 내
용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고스란히 이식하는 과정이 아니다.
모든 이해
는 불가피하게 언어라는 불완전한 전달 매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언어를 통해 이해한 것이 정말 그가 사유했던 것과 정확히 동일한 것이
라는 사실은 어떻게 증명될 수 있는가? 물론 내가 직접 그의 정신 안으로 들
어가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다시 '내가 옳게 이해했는지'를 그에게 묻는 것이다.
그
러나 이것은 불완전한 전달로 불완전한 전달을 보완하려는 시도이며, 따라서
그 시행이 아무리 많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결코 완전성에 도달할 수는 없다.
⑤ 우리는 우리의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
지식이 진보하는 방식, 특히 우리의
과학적 지식이 진보하는 방식은 정당화되지 않는, 그리고 정당화될 수도 없
는 기대, 추정, 문제에 대한 잠정적 해결, 추측 등에 의해서이다.
이런 추측은
비판에 의해 통제되는데, 비판은 엄격한 시험을 포함하는 기획된 논박이라
할 수 있다.
추측들은 이런 시험을 통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추측이 아직 틀리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것들은 결코
적극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결코 확실한 참으로 확립될 수도 없고, 또한
확률 계산의 의미에서 개연적인 것으로 확립될 수도 없다.
흔한 통념, 즉 과
학은 관찰에서 이론으로 나간다는 신념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어떠한 이
론의 개입도 없는 순수한 관찰은 없다.
관찰은 항상 선택적이기 때문이다.
즉
관찰은 이미 선택된 대상, 한정된 과제, 탐구자의 관심, 관점, 문제들에 의해
규정된다.
우리는 결코 딱정벌레를 수집하듯, 실재를 수집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가설의 최후의 검증이란 공허한 이상일 뿐이고, 가설과 검증된 이
론의 차이는 없다.
우리가 실수로부터 배운다는 말은 우리는 엄격한 비판을
통해 틀린 추측을 제거해 나갈 뿐이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실수로부터 배우
기 때문에, 우리가 결코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지식은 성장한다.
우
리의 지식은 성장하므로, 여기서 이성에 대한 절망에 빠질 이유는 없다.
200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0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200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