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관한 것이다.
논리 전개상 가장 적절한 문단 순서는?
- (가) 조공책봉체제에서 중국은 중화, 곧 문명의 중심을 표방하면서 중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18세기에 들어와 동아시아 각국이 모두 자국을 중화로 자처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은 청조의 여진족이 문화적으로 열등한 종족이었다고 해서 중국 한족이 이룬 중화의 문명은 이제 조선에서만 계승되고 있다고 하면서 조선 중화를 내세웠다.
그리고 일본은 만세일계의 천황가를 가지고 있는 나라야말로 바로 중화라고 했다.
월남도 19세기 초에 중화를 자처하면서 주위국들을 상대로 조공책봉체제를 만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청조 자체도 중화의 해석을 새로이 시도한 점이다.
즉 옹정제는 문무가 온전하게 갖추어진 상태가 곧 중화라고 하여 한족이 문덕, 여진족이 무공으로 각각 역할을 분담하여 중화를 이룰 것을 촉구했다.
- (나) 동아시아 3국은 서로 자국 중화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가운데 19세기 초반부터 서양 열강국이란 손님을 맞게 된다.
이 손님들은 기계문명의 위력, 국민국가로서의 단위성, 그리고 국제관계의 룰 등으로 무장된 힘센 존재였다.
이 손님들은 우세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그들이 만든 국제법을 차등적으로 적용하면서 고압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동아시아 각국은 전통적 조공책봉체제의 구심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각국 중화주의의 어떤 새로운 룰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 손님들의 방식에 그냥 끌려가는 형세를 면치 못했다.
한 시기의 낙후성이 비싼 값을 치르기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 (다) 중국 중심의 조공책봉체제를 부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 체제는 북방 민족으로부터, 또는 일본으로부터 도전을 받기도 했지만, 하나의 질서로서 장기간에 걸쳐 존속한 것은 사실이다.
그 중심이 한족이 아닌 북방족으로 바뀐 경우는 있었지만, 이 체제가 뒤엎어지거나 이를 대신하는 새로운 체제가 만들어진 적은 없다.
그것은 유럽 중세의 신성로마제국 체제에 견줄만한 규모와 지속성을 가진 것이다.
다만, 신성로마제국 체제에 비해 주체의 일방성이 훨씬 강한 차이가 있지만, 국제질서로서의 기능성은 비슷하였다.
- (라)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신성로마제국은 해체의 방식으로 국제법을 만들어간 반면, 동아시아의 각국 중화주의는 국가 간의 개별의식, 독존의식이 높아져 가면서도 새로운 관계의 틀이나 룰을 만드는 데 소극적이었다.
- (마) 중화에 대한 각국의 해석은 차이가 있지만, 각국 중화주의는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조공책봉체제가 무너지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의식상으로는 그랬다.
흥미로운 것은 그 시기가 바로 신성로마제국의 해체기와 오버랩된다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신성로마제국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해체의 방식에 대한 기본 합의를 보고, 19세기까지 때로는 폭주하듯이 때로는 느린 속도로 해체가 진행되었다.
① (가)-(나)-(다)-(라)-(마) ② (가)-(나)-(마)-(라)-(다)
③ (가)-(마)-(나)-(다)-(라) ④ (나)-(마)-(라)-(가)-(다)
⑤ (다)-(가)-(마)-(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