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해설
2007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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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밑줄 친 대답에 대한 평가로 가장 적절한 것은?
그렇다면 당시 순 한글로 되어 있는 조선 문학의 위상이란 과연 무엇인가? 1920년대 조선 문학가들은 한자와 일본어 해독 능력이 식민지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임을 알았다.
더구나 문학가가 되려면 일본어 책을 비롯한 외국어 책을 필수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창작 활동만은 온전한 조선어 순 한글체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이를 신념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 인식이 식민지 시기 조선 문학의 특수성을 규정한다.
稻香(나도향) : 언제나 말하는 바지만 月灘(박종화)군은 漢文套를 너무 써.
俯戀(염상섭) : 그런데 이것은 딴 말이지만(두툼한 眼鏡을 번 덕거리면서) 작품에 京語를 씁니까? 어떤 作品에는 地方語가 많아서 理解기가 어려워요.
仁根(방인근) : 對話에는 地方語를 써도 관계치 않겠지만 說明에는 京語를 써야겠지요.
…<중략>…
俯戀(염상섭) : 任英彬군의『亂倫』도 좋아요.
이 行文이 아주 流暢하던데요.
月灘(박종화) : 그런데 漢文을 너무 쓴 것이 덜 좋아요.
『조선문단』합평회 2월 창작총평,『조선문단』6호, 1925년 3월
憑虛(현진건) : 그런데 그거(『땅속으로』) 웬 漢字를 그리 썼는지?
春海(방인근) : 그래요.
釜山驛이니. 東京驛이니.
憑虛(현진건) : 지명은 괜찮으나 그 밖에도 아니 써도 좋을 한자를 너무 써서!
『조선문단』합평회 3월 창작총평,『조선문단』7호, 1925년 4월
『조선문단』합평회에서 염상섭, 나도향, 현진건, 방인근 등은 박종화와 조명희의 소설에 불필요한 한자어가 사용된 것을 비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대부분의 작가들이 소설 작품은 순 한글로 써야 한다는 원칙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러나 이 원칙이 작가 지망생들인 지식인 전체에 온전히 통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자 남용을 파헤야 한다는 논의 자체가 위와 같은 한자 투성이 문장에 얹혀 지식 청년들에게 전달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1920년대 '순조선어 창작'에 대한 문학가들의 의식은, 무엇보다도 당대 독자의 책 읽기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한편 1890년대~1900년대에 이어진 '국어국문 운동' 정신의 계승 변용으로 볼 수 있다.
1890년대 이후 '文'의 개념이
크게 변화하고 새로운 지향성을 가진 계몽 지식인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소설의 문장은 순 국문체 문장의 대표적인 매개가 되었다.
그리고 단지 '표기'가 아니라, '문체' 차원에서는 1900년대 최남선과 이광수의 작업이 선구성을 띤다는 점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詩文體'라는 기준을 만들어 스스로 순 한글 문장 쓰기를 실천하였는데, 그것이 문학가들에게 하나의 모범으로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① 한자를 남용한다고 비판받던 박종화가 임영빈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아 순 한글 소설에 대한 관념과 실제 창작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② 서울 출신인 염상섭이 京語을 인정하고 地方語를 배척한 것은 명백한 자기중심적인 태도이다.
③ 地名은 한자로 써도 된다는 현진건의 태도는 일본어 표기에 익숙해져 있는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④ 대화에는 地方語를 쓸 수 있지만 설명에는 京語만 써야 한다는 방인근의 태도는 이중적인 태도이다.
⑤ 염상섭이 임영빈의『亂倫』을 놓고 行文의 流暢함을 논하는 것은 논의의 주제를 보다 다양화하기 위한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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