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가)~(마)는 서로 대립되는 두 역사관 중 어느 하나를 담고 있다.
유사한 역사관을 주장하고 있는 것끼리 묶은 것은?
- (가) 워털루 전투에 대한 저술은 프랑스인, 영국인, 독일인, 네덜란드인이 모두 다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누구라도 필자 목록을 들춰보지 않고서는 옥스퍼드 주교(主敎)가 어디에서 펜을 놓았는지, 그 펜을 집어든 사람이 페어베인인지 개스케인지 리베르만인지 해리슨인지 알 수 없어야 한다.
- (나) 18세기 이래 근대적 학문으로서 역사학은 '계몽의 수사학'이었다.
과거를 순수하게 재현한다는 그 슬로건의 배후에 계몽적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즉, 국가주의, 자유주의, 인간 해방, 또는 단순한 교훈, 그 무엇이든 계몽적 정신의 발현이라는 특징을 지녀온 것이다.
여기에서 진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진실에 이름으로써, 그것을 통하여 계몽적 의도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에 이르는 과정과 역사학의 학문적 방법 및 절차야말로 전형적인 이항대립의 과정이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나누고, 수많은 사료와 문서에 대해서도 적합한 것과 적합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며, 그 적합한 것(실은 의도에 맞는 것)들의 연쇄와 상호 관련성을 통하여 진실에 이르는 작업을 계속한다.
- (다) 역사가의 제1법칙이 오직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두 번째 법칙 역시 진실을 말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임을 그 누가 모르겠는가? 역사서 어느 곳에서도 편향성이 있어서는 안 되며 역사가의 악의가 개입되어서도 안 된다.
- (라) 지금까지 역사에는 과거를 판단하거나 윤택한 미래를 위해 교훈을 제공해 주는 기능이 있었다.
이 책은 이러한 고상한 과업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진실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려고 할 뿐이다.
- (마) 과거 역사학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면 역사가라고 해서 결코 다른 역사적 행위자를 심판하는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 자신이 역사 형성의 한 요인에 불과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할 수 있다.
역사가는 일견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여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물인 역사적 '해석'은 역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역사가들이 '사실'에 대한 과신 때문에 자신의 해석이야말로 역사적 '진실'이라는 자기 확신에 매몰되는 경우를 우리는 드물지 않게 목격하지만, 역사학이란 좀 냉혹하게 말하자면 '사실'–'사실 조각'이라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만–을 가지고 하는 일종의 '진실 게임'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역사가라면 누구나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은 이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일 뿐이므로, 누구의 해석이 더 진실에 가까운가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이 얼마나 더 정확한가보다는 얼마나 많은 동료 역사가와 대중이 그 해석을 지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① (가), (나), (다) ② (가), (나), (마)
③ (가), (다), (라) ④ (나), (다), (라)
⑤ (다), (라),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