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해설
2011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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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의 논지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은?
전쟁(戰爭)은 원래 국가 간의 무력충돌을 말하고, 전쟁 의사를 결정할 당국의 대내적인 결정 절차에 의한 충돌이어야 국제법상 전쟁이라 말한다.
그러한 결정 절차를 밟지 않은 일부 무장부대 사이의 충돌은 사변(事變)이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한말 의병도 일부 무장부대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대한제국이 엄연히 존재하였고 전쟁 의사를 결정할 국왕과 정부가 전쟁 의사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전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대한제국 국왕과 정부는 국민이나 민족의 의사를 대변할 처지에 있지 못하였다.
특히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가 체결된 이후부터는 대한제국의 주권의 행사인 통치행위가 일본제국주의의 '시정개선의 충고'라는 명목의 간섭으로 제약을 받았다.
주권의 본질인 최고·유일·절대·불가분의 성격은 1904년 2월부터 가시적으로 잠식되고 박탈당하여 결국 1910년에 이르러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만 것이다.
때문에 1904년 한일의정서가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국왕과 정부는 민족의 의사를 대변할 처지에 있지 못하였다.
따라서 전쟁의사도 결정할 처지가 못 되었다.
그럴 때 민족의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제도권의 형식적 당국자가 아니라 민족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런데 민족 자체라면 모호하기 그지없다.
거기에서 구체적으로 민족운동의 주류를 형성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추적해서 민족의 대표의지를 포착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운동의 주류의지와 행동양식을 민족의 대변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구한말 주류는 무엇이었던가. 일제 침략에 항거한 의병운동이 민족운동의 주류를 형성했고 의병의 의지가 민족의 양심과 의지를 대변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의병운동을 민족의지를 표현한 성격의 호칭인 의병전쟁이라고 할 때에는 이러한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민족운동의 세계사적 유형은 민족혁명운동과 민족해방운동, 그리고 민족통일운동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역사의 정상 궤도라면 반봉건적 민족혁명운동이 선행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경우에도 그것이 개화개혁운동이나 동학농민전쟁으로 나타났는데, 그러한 민족혁명운동의 추진 중도에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을 때는 민족혁명운동과 더불어 반제국주의운동인 민족해방운동, 즉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했다.
그 때 어느 것을 우선하고 상위개념으로 설정해야 할 것이냐의 문제는 역사조건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된 때부터는 민족해방운동이 앞서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한말 민족운동에서 계몽운동보다 의병전쟁이 민족의 중심이념이었고 민족운동의 주류의지였다고
이해되는 것이다.
계몽운동도 구국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병전쟁과 비교했을 때, 근대지향적이기는 해도 구국이념의 성격이 모호했거나 소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의병전쟁을 민족운동의 주류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① 1919년 3.1운동의 기본 정신이 잘 표현된 기미독립선언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 선언을 세계 온 나라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크고 바른 도리를 분명히 하며, 이것을 후손들에게 깨우쳐 우리 민족이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길이 지녀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②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1919년 9월 11일 일본의 침략을 피해 망명지인 상해에서, 한반도의 강제점령을 부인하고 국내외를 통할·통치하고 항일투쟁을 지휘하기 위한 목적으로 각지의 한국의 임시정부들을 통합하여 수립하였다.
초기 헌법에 해당하는 임시헌장을 선포하였는데, 그 첫머리는 "신인일치로 중외 협응하여 한성에서 기의한 지 30유여 일(有餘日)에 평화적 독립을 300여 주에 광복하고, 국민의 신임으로 완전히 다시 조직한 임시정부는 항구 완전한 자주독립의 복리로 아 자손 여민(黎民)에게 세전(世傳)키 위하여 임시의정원의 결의로 임시헌장을 선포하노라."라고 되어 있다.
③ 1923년 진주에서 '저울[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지향하는 단체[社]'란 뜻을 가진 형평사가 창립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전개된 형평운동은 우리 역사상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는 대표적인 인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백정'이란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 철폐와 인권 존중, 평등 대우를 주창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 평등'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일깨우는 활동이었다.
④ 1927~1931년에 국내민족운동을 담당하고 지도했던 민족주의 독립운동세력과 사회주의 독립운동세력이 연합하여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를 창립하였는데, 그 이념은 발기인 대회에서 채택한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함,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함,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이라는 강령에서 찾아볼 수 있다.
⑤ 조선어학회란 새삼 무엇이뇨. 숨은 신으로서의 '한국 국민국가'의 대행기관이자 그 실체였음이 정답이다.
조선어연구회(1921)를 이어받은 조선어학회(1931)는 '조선 독립을 위한 실력 신장의 수단'(조선어학회 사건 공판 판결문)이었다.
근대문학이란 무엇이뇨. 국어로 하는 문학을 가리킴이 원칙이다.
국어란 또 무엇이뇨. 국가어의 준말이다.
이 경우 국가란 국민국가를 가리킴이 아닐 수 없다.
곧 문학의 처지에서 보면 조선어학회란 한국의 국민국가의 언어를 관장하는, 국내에서의 실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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