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해설
2011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문제 번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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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여기 탐스러운 흰 장미꽃 다발이 하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장미를 보고 한 사람이 "이 장미의 꽃말은 '정숙'이야. 그래서 나는 이 꽃을 좋아해."라고 말했다고 치자. 그 때 이 사람은 이 장미를 장미로서 보기를 그친 것이다.
그의 시선은 장미를 통과하여 그 뒤에 있는 '정숙함'이라는 추상적 덕성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흰 장미의 소담스러운 모습이나 은은한 향내에는 관심조차 없다.
마치 우리가 유리창을 통해 밖의 경치를 내다 볼 때 우리의 시선은 유리를 통과하지만 그 유리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과 똑같다.
이 때 장미는 마치 유리창과도 같은 투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정숙함'이라는 덕성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이 옆에서, 이 장미의 꽃말에는 아랑곳없이 꽃 자체의 고운 자태와 향기에 감탄했다면, 이 사람에게 있어서 관심의 대상 즉 목적은 장미꽃일 뿐 그 외의 어떤 것도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장미꽃은 그의 시선을 가로막는 불투명성이다.
그의 눈길은 마치 단단한 돌부리에 발이 걸리듯, 그렇게 그 장미꽃에 가서 탁 부딪친다.
그 장미꽃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멈춰 선다.
이 때 장미꽃은 그 어떤 것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장미는 '사물'이 된 것이다.
장미는 원래 사물이지 않은가 하고 의아해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리의 예를 들어보자. 커피나 홍차를 저은 후 찻숟가락을 찻잔
받침에 내려놓을 때 딸깍하는 소리가 들린다.
늘 무심히 지나쳐 버렸던 이 소리가 유난히 마음에 파고들며 뭔가 알 수 없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나는 머릿속에서 아까 들었던 그 소리를 자꾸만 반추해본다.
다시 말하면 나는 그 소리에 자꾸만 다시 돌아와, 그 소리의 성질 앞에 멈춰 서서, 그 소리 자체에 매료된다.
평소에 투명했던 그 소리는 지금 불투명하게 되었고, 그것은 사물이 되었다.
이번에는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생각해 보자. 추상화는 말할 것도 없고 구상화의 경우에도 화가가 초록, 빨강, 노랑 등의 색깔을 칠하는 것은 단순히 나뭇잎이 초록색이니까, 또는 꽃이 빨간색이니까 그런 것은 아니다.
마티스의 빨간 카펫은, 그가 그린 방의 카펫이 실제로 빨간색이어서가 아니다.
만일 그가 현실 속의 어느 방을 그대로 딴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 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면, 화폭 위의 그 방은 현실의 어느 방을 지시하는 하나의 기호일 것이다.
그러나 화폭 위의 색깔은 전혀 그런 의도에서 선택된 것이 아니다.
화가는 그 색깔 자체에 매혹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매혹시킨 그 색깔을 내기 위해 고심하며 색 배합을 하고, 그것을 화폭에 옮겼을 것이다.
이 때 색깔은 사물이 되었다.
무엇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앞에 와서 머무르는 불투명의 사물이 된 것이다.
사르트르가 말한 '물체가 된 색깔 (couleur-objet)'이라는 합성어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색깔만이 아니다.
형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모델로 삼은 새나 물고기 혹은 집이 실제로 있었을지 몰라도 그의 그림은 그대로 그것들을 형상화한 것은 아니다.
그 대상들을 그대로 옮겨 그린 것이라면 사진이 더 낫지 않겠는가? 이 말은 물론 이 그림들이 사실 속의 물건과 닮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닮고 아니고의 문제는 무의미하다.
이 세상의 어떤 물건을 그림으로 나타내려는 것이 화가의 의도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화가가 종이 위에 선으로 그린 새나 물고기나 집은 새를, 물고기를, 또는 집을 지시하는 기호가 아니다.
만일 새를 지시하기 위해 새의 그림을 그렸다면 우리는 그 화폭 앞에서 화폭을 유리창처럼 통과하여 그 뒤에 있는 어떤 새의 모습을 연상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화폭을 통과하지 않고 그 앞에 머물러 그 새의 순수한 형태와 색깔에 한없이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새의 형태는 사물이 되었다.
물론 이렇게 창조된 '색깔-물체'가 화가의 은밀한 경향을 반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의 말이나 표정이 우리의 분노나 고통, 또는 기쁨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주듯이 그렇게 그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기호는 아니다.
가령, 골고다 언덕 위의 하늘을 노란색으로 칠한 틴토레토는 예수의 고뇌를 의미하기 위해, 또는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고뇌를 야기하기 위해 이 색깔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가 어떤 고뇌를 느끼며 이 색깔을 칠했다 해도 이 노란색은 고뇌의 기호는 아니고 차라리 '사물로 굳어진 고뇌'일 뿐이다.
만일 화가가 또는 음악가가 자신의 어떤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했다면 이때 색과 소리는 완전히 의사소통 수단과 똑같은 기능의 기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라 도로 표지판이나 광고 차원의 실용적인 기술일 것이다.
따라서 단순하게 말해본다면 예술가는 색깔이나 소리를 표현 기호로 보지 않고 사물로 보는 사람이다.
<보 기>
ㄱ. 시(詩) 속에 표현된 시인의 감정은 사물이 되어 불투명성을 갖고 있다.
ㄴ. 시인에게 시적 언어란 투명한 도구이며, 이 도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의사소통이다.
ㄷ. 화가는 그의 화폭에 기호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을 창조하기를 원한다.
ㄹ.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색깔과 소리, 인간과 신, 사랑과 미움 등이 모두 사물이 된다.
ㅁ. 시인은 단지 문장을 하나 썼을 뿐이지만 그 문장은 시인의 가장 고귀한 정신세계의 표현이었다.
① ㄱ, ㄷ ② ㄴ, ㄹ ③ ㄴ, ㅁ ④ ㄷ, ㄹ ⑤ ㄹ,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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